가족의 탄생(2006),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2018)-핏줄을 넘어 스스로 가족을 선택한다
가족=결혼+혈연 또는 입양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이어지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정의 달'이다. 사전적 의미로 가족(家族)은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 또는 입양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가족’이란 집단은 존재했고, 그것이 제도화되어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조금 다른 가족들
<가족의 탄생>에서 미라(문소리)는 동생 형철(엄태웅)이 데려온 연상의 여인 무신(고두심)이 영 못마땅하다. 언젠가 유학을 가고 싶지만 지금은 관광 가이드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선경(공효진)은 남자 친구(류승범)와 관계가 삐걱거린다. 게다가 엄마(김혜옥)는 이 남자 저 남자 품을 전전한다. 경석(봉태규)은 여자 친구 채현(정유미)이 모두에게 친절한 것이 싫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서투르게 떼를 쓴다. 시간이 흘러 가족이 된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미라와 무신, 무신이 데려온 채현이다. 미라는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친동생인 형철을 밀어낸다. 헤픈 엄마가 지긋지긋하던 선경이지만 엄마가 남긴 남동생 경석을 데리고 산다. 이들은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각자의 마음의 구멍을 메워준다. 이들은 혈연 이상의 유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어느 가족>은 조금 더 위험하다. 얼핏 보기에 할머니, 남편과 아내, 아내의 여동생, 그리고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단란한 6명의 가족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6명은 혼인, 혈연, 입양이라는 사회적, 법적 관계가 전혀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부부인 줄 알았던 이들은 과거 불륜 상대였으며, 할머니는 남편이 바람나서 오래전부터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았다. 남편의 혼외자의 딸, 즉, 할머니의 손녀뻘이긴 하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그 아이는 숨 막히는 가족에게서 도망쳐서 할머니를 찾아왔다. 남자아이는 파칭코 주차장에서 질식사 할 뻔한 걸 구했고, 여자아이는 엄마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구했다. 이들의 관계는 현재로서는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오히려 보험금 갈취, 유괴, 납치 등 현행법을 위반한 행동으로 지탄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서로에게 강한 애정을 느끼고, 서로 고마워하고, 서로를 구하려 한다. 이들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지옥에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가족을 선택했다".
스스로 가족의 형태를 선택한다
인간의 가족이 동물의 군락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단순히 개체 수를 늘리고,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한다면 인간 집단은 동물의 군락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인간의 가족은 동거 이상의 의미, 즉 문화를 전수하고, 애정을 나누는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과거에는 생식과 생계 유지, 즉 생존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강조했다. 혈연이라는 끈으로 묶어 어떤 고난 앞에서도 뭉치라고 했고, 그렇게 혈연 중심의 집단은 농업혁명, 산업혁명 시기를 지나 21세기 정보화 혁명 시기까지 이르렀다. 현대 문명국가에서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자연재해, 소규모 국지전 등이 있지만 사람들은 전쟁을 억제할 다른 방법을 갖고 있고, 비축해 놓은 식량도 있으며, 위험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도 쉬워졌다. 기술과 문화의 발전 덕분에 종족 전체의 생존율이 올라갔음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삶의 질도 향상됐다. 이제 인간 개인은 생존 그 자체가 아닌 ‘삶의 질’을 고민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결혼과 혈연, 입양을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그런 존재를 원한다.
<가족의 탄생>과 <어느 가족>의 가족들은 현재로서는 사회적,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동거인 이상이 될 수 없으며, 가장 파격적인 가족관을 가진 유럽에서조차 이들의 관계는 가족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다. 혈연으로 이어진 인간이 아닌 반려 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결혼을 하지 않고도 출산을 한다. 그렇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한다. 하긴 예전에는 입양도, 동거도, 혼외자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의 범위는 조금씩 넓어졌다.
저들과 같은 형태까지 당장 가족으로 인정하고, 제도권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갈 것이며, 그것은 생존에 대한 걱정이 없고, 생식의 고민조차 과학이 해결해 주는 이 사회가 만들어낸 흐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가 깊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