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ガー&ドラゴン(타이거 앤 드래곤, 2005), 俺の家の話(우리 집 이야기, 2021)-라쿠고와 노가쿠로 나타낸 넓고 깊은 마음, 그것이 가족
쿠도 칸쿠로가 그려내는 홈 드라마
쿠도 칸쿠로(宮藤 官九郎, 일명 쿠도칸)는 일본의 유명 극작가로 특유의 개그 코드를 갖고 현실을 비꼬는 히트작을 만들어 왔다. 원작이 있는 작품(IWGP, 유성의 인연, 갠지스 강에서 버터플라이)에서는 개그 코드로 무거움을 덜어냈고, 오리지널 작품(원작이 없는 순수 창작 작품)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는 이색적인 소재를 엮어서 이야기를 전개하곤 하는데, 야구에 빗댄 동네 친구들의 도둑질 이야기(키사라즈 캣츠아이), 이상한 사람들이 모이는 방송국 앞 카페 이야기(맨하탄 러브 스토리), 산리쿠 지방의 해녀이자 아이돌인 소녀 이야기(아마짱), 불교계 남학교와 카톨릭계 여학교 이야기(미안해 청춘) 등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실없는 웃음만을 유발하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되는 것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데, 지방 아이돌(아마짱)이나 유토리 세대(유토리인데, 문제 있습니까?) 등이 그 예이다. 그는 재미있는 극을 만들면서 동시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타이거 앤 드래곤>과 <우리 집 이야기>에서는 전통 예능을 소재로 가족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통 예능을 이색적으로 소개
タイガー&ドラゴン: 라쿠고(落語) X 야쿠자
라쿠고(落語)는 라쿠고가(落語家) 혼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본의 서민 예능이다. 에도시대에 시작됐으며 대부분의 내용이 술, 노름, 유곽 등에 빠진 에도 시대 서민의 이야기이다. 가부키나 노가쿠가 “극”이라면 라쿠고는 “이야기” 뿐이라 라쿠고가의 개성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완전히 다르게 전해질 수 있다.
<타이거 앤 드래곤>에는 라쿠고가가 되려는 야쿠자가 등장한다. 야마자키 토라지는 신주쿠 류세이카이에 속한 야쿠자로 자타 공인 “재미없는 남자”이다. 어렸을 때 부모가 빚에 몰려 동반 자살했고, 겨우 살아남은 그는 야쿠자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신산한 삶을 살면서 웃을 일이 없었던 그가 400만 엔의 빚을 받으러 갔다가 라쿠고를 접하고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그래서 라쿠고를 배우겠다고 달려든다.
그에게 라쿠고를 가르쳐 주는 하야시테이 돈베이는 유명 라쿠고가로 야쿠자에게 400만 엔을 빌렸다. 그의 둘째 아들 류지는 재능은 있지만 부담을 이기지 못해 라쿠고를 그만두고, 우라하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야쿠자에게 빌린 400만 엔 덕분에 아들은 옷가게를 열 수 있었다.
웃기는 재주는 없는 유능한 야쿠자(타이거=토라)와 웃기는 재주는 있지만 패션 센스는 없는 옷가게 주인(드래곤=류)이 서로 얽히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매회의 에피소드가 각각 라쿠고의 한 대목과 연결되어 완성된 이야기가 된다. 여자에게 빠지거나 술에 빠지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그럼에도 가족을 챙기거나 의리를 지키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에도시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俺の家の話: 노가쿠(能楽) X 프로레슬링
노가쿠(能楽)는 노(能)라는 가면을 쓰고, 시키산반(式三番)과 광언(狂言)을 통해 극을 진행하는 일본 전통예술로 일본의 중요 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주로 신사에 있는 전용 무대인 노부타이에서 상연한다.
라쿠고가 혼자서 말로 풀어내는 서민 예능이라면 노가쿠는 주인공과 가면, 악기까지 어우러지며, 일부 계층(사무라이)만이 향유했던 고급문화의 하나이다. 라쿠고는 라쿠고가의 개성에 따라 이야기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편집하고,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반면 노는 정해진 틀을 그대로 계승해야 한다. 라쿠고는 기본적으로 가문을 통해 계승되지만 재능이 있는 제자들이 신우치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문파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노가쿠에서는 속한 문파와 류에 따라 할 수 있는 배역이 정해져 있고, 철저히 가족에게만 계승된다. 그래서 노가쿠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 어떤 가업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집 이야기>의 미야마 쥬이치는 노가쿠에서 시테가타(주인공)를 맡는 정통 문파의 종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에는 커다란 무대가 있고, 문하생이며, 노가쿠 관계자들로 항상 집이 북적였다. 나중에 인간국보가 되는 아버지는 노가쿠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번도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반항기에 들어선 쥬이치는 노가쿠를 버리고, 가출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프로레슬러의 길로 들어서서 미야마 쥬이치가 아닌 “블리자드 고토부키”로 25년을 살았다.
쥬이치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25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늘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 인간 국보인 아버지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됐고 자식이 없으면 목욕도 할 수 없었다. 치매가 와서 간병인과 결혼하겠다고 헛소리를 하는 그냥 “노인”이 됐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쥬이치는 프로레슬링을 은퇴하고, 아버지 간병을 하면서 노가쿠를 배워 가기로 다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당장에 돈이 없는 쥬이치는 가족들 몰래 “슈퍼 제아미(世阿弥) 머신”으로 프로레슬링에 복귀했다. 정(靜)적인 노가쿠를 배우면서 동(動)적인 프로레슬링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가족이라는 것
タイガー&ドラゴン: 가족이 된다는 것
<타이거 앤 드래곤>에서 그리는 가족은 팍팍한 삶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눠 먹는 사람들이다. 식구(食口)라는 말처럼 하야시테이 돈베이의 집에는 제자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 하야시테이 집안 사람들은 부모님을 잃고 야쿠자로 살아왔던 토라지에게도, 오랜 시간 간병을 해왔던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음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 도쿄로 가출한 메구미에게도 따뜻한 가족이 되어준다. 하야시테이 뿐 아니라 야쿠자인 류세카이도 갈 곳 없는 토라지를 받아주고, 가족으로 대해준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앉아 밥을 먹으면서 가족이 되어간다.
俺の家の話: 가족을 떠나보낸다는 것
<우리 집 이야기>에서 그리는 가족은 조금 팍팍하다. 인간 국보인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문하생도, 협회 관계자들도 떠났다. 넓은 집안에는 서먹서먹한 가족만이 남았다. 아버지는 살면서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고, 자식들은 어리광 한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한 채 어른들 틈에서 눈치를 보면서 자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병은 삶을 짓눌렀다. 세상이 보는 것과 달리 아버지는 재산을 많이 남기지 않았고, 대신 전국 곳곳에 애인을 많이 남겼다. 인간 “국보”인 아버지는 실제로는 야한 책만 보는 하나의 “인간”일뿐이었다. 인간인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유언장과 엔딩노트를 만들고, 장례식 준비를 했다. 치매가 악화되자 아버지를 그룹 홈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매정한 일일지라도 그것은 엄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25년 만에 집에 돌아온 장남은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다른 가족들과 화해했고, 자신의 아들이 노가쿠를 계승하는 모습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우리 집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가족들을 떠나갔다.
피가 이어지면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진정한 가족이 되기도 하며, 피가 이어졌어도 남보다 못한 원수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피’가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기다려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마음이 아닐까?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가족을 떠나보낼 때는 깊은 슬픔이 찾아온다. 가족은 넓고, 깊은 마음에 담아 늘 함께 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