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1999), 치코와 리타(Chico and Rita, 2010), 리빙 하바나(For Love Or Country: The Arturo Sandoval Story, 2000)-찬란한 음악이 흐르는 빛 바랜 도시, Havana

mokumoku 2021. 5. 2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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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아바나(Havana).

쿠바의 수도. 체 게바라가 다시 세우고, 카스트로가 지배한 곳.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뜨겁게 써 내려간 곳. 스페인풍 건물 앞을 올드 카가 지나가고, 해 질 녘에 말레콘에 모여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곳.

 

지구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도 멀지만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심리적 거리도 멀다. 그래서 쿠바, 특히 아바나를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손에 잡힐 듯이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꿈속을 좇는 듯 아득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쿠바에 가보지 않았어도, 쿠바에 대해 잘 몰라도 쿠바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라틴재즈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쿠바는 룸바(Rumba), 손(Son) 등의 장르의 원산지이자 라틴음악의 메카로 불린다.

 

찬란한 음악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가 쿠바 뮤지션들을 찾아내 전통음악인 손(Son) 앨범을 녹음하는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쿠바의 뮤지션들은 정부의 탄압과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졌고, 한때 쿠바의 사교 클럽을 주름잡던 이들이 구두닦이나 이발사로 늙어가고 있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이들을 찾아내 단 6일 만에 녹음한 앨범이 어떻게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는지 보여준다. “Chan Chan”을 들으면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그 곡조가 그들의 삶과 겹쳐진다.

 

<치코와 리타>는 쿠바 혁명 이전의 반짝이던 아바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능있는 피아니스트인 치코가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리타를 만나 환상의 팀을 이룬다. 그들은 금방 사랑에 빠지지만 오해와 질투, 열정과 욕망 때문에 결국 헤어지게 된다. 미국에서 추방된 치코는 혁명이 일어난 아바나에서 피아니스트가 아닌 구두닦이로 늙어버렸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그를 찾아온 외국 프로듀서 덕분에 그의 재능은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쿠바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빅밴드 리더였던 베보 발데스(Bebo Valdés)의 일생에서 치코라는 캐릭터를 따왔고, 실제로 치코가 연주하는 피아노 부분은 베보 발데스의 아름다운 연주로 채워졌다. 리타가 부르는 “베사메 무쵸(Besame Mucho)”를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리타에게 반하게 될 것이다.

 

<리빙 하바나(Leaving Havana)>라는 한국어 제목의 영화는 원래 제목이 <For Love Or Country: The Arturo Sandoval Story>로 쿠바 출신 트럼펫터 아투로 산도발이 사랑에 빠지고, 음악과 사랑 그리고 억압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망명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린다. 카스트로 치하의 쿠바에서 고뇌하던 산도발의 모습이 아름다운 아바나의 풍경을 배경으로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과 대비된다. 아내를 위해 만든 “Marianella”를 들으면 그가 망명을 결심하기까지 힘들었을 것이란 짐작을 하게 된다.

 

빛 바랜 도시

1959년 쿠바 혁명 이후로 아바나의 재즈 뮤지션들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국가는 자본주의 색채가 짙은 음악을 탄압했고, 때문에 자유롭게 연주하고, 노래 부르던 이들은 구두닦이나 이발사로 전락했다. 음악을 하기 위해 아투로 산도발이나 베보 발데스처럼 망명하거나 아니면 쿠바에 남아 촌부로 늙어갔다. 그래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그려내는 쿠바 뮤지션의 재기는 마치 동화 속 이야기 같다. 그것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사회주의 쿠바에서 배급을 받으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늙어갔다.

 

카스트로 사후에도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있는 쿠바는 가난한 나라이다. 거의 대부분의 산업이 국영으로 운영되며, 국민의 약 70%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따라서 다른 산업 부분의 발전이 미약해 생필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GDP의 약 10%를 관광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까지 유지된 쿠바의 이중통화제는 어떻게 하면 관광객에게 좀 더 많은 돈을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이다.

 

어떤 이들은 쿠바의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예로 들면서 지상낙원이라 칭한다. 그러나 그 지상낙원 뒤에는 결국 생계를 미국에 의존하는 실체가 숨어있다. 수년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어 받는 ‘월급’이 관광객 대상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웨이터의 ‘일당’보다 못하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서는 보트 피플로 미국 땅을 밟은 이가 많다. 이들이 번 돈은 쿠바로 흘러간다. 보트 피플이, 관광객이 주는 돈으로 사회주의 쿠바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레트로 감성이 넘쳐나는 낡은 건물은 새로 지을 수 없어 그대로 쓰는 것이고, 올드카는 쿠바 혁명 이후 경제제재때문에 차를 수입할 수 없자 계속 고쳐서 쓰는 것이다. 그렇게 쿠바, 아바나는 빛을 잃어갔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면 좋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 유토피아라면 망명을 하는 이도 없을 것이고, 보트 피플이 되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이도 없을 것이며, 누구나 하고 싶은 음악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쿠바는 모든 이의 유토피아라 할 수 없다.

 

최근 들어 미국도 변하고 있고, 쿠바도 변하고 있다. 아바나가 다시 빛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