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의 흥망성쇠-한 시대를 휩쓴 모두를 위한 동화

mokumoku 2021. 5. 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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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지브리의 시작: 열풍을 일으키자!

지브리(GHIBLI). 토토로, 하울,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라퓨타… 이름만 들어도 설레며 동시에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그곳.

 

GHIBLI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熱風)”이란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이며, 동시에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용 정찰기의 명칭으로(원래 정확한 음은 ‘지브리’가 아니고, ‘기블리’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라고 박박 우겼다), 비행기 마니아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명칭을 제안했다. 지브리는 그 이름대로 기존의 애니메이션계에 열풍을 일으켰다.

 

지브리의 3두 체제: 미야카지 하야오-타카하타 이사오-스즈키 토시오

지브리를 언급할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원래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이하 미야자키)가 만들고 싶은 장편 애니를 마음껏 만들기 위한 공간이며, 동시에 미야자키가 지브리에서 가장 유명하고 흥행에 성공한 감독이기도 하지만 지브리에 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이하 다카하타), 스즈키 토시오(이하 스즈키)의 3두 체제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애니메이터였던 미야자키를 발굴하고, 감독으로 이끌고 온 것은 다카하타였다. 다카하타는 우리에게 익숙한 <빨강머리 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등의 TV 애니 시리즈를 만든 감독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끌고 왔고, 지브리 초기작(나우시카, 라퓨타)의 프로듀서였으며, <반딧불이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가구야 공주 이야기> 등의 명작을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왼쪽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오른쪽 가구야 공주 이야기), 사진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스즈키 토시오는 원래 잡지 편집자였다. 만화잡지 <아니메쥬(アニメージュ)>의 담당자로 미야자키와 다카하타를 취재했고, 만남을 이어가다보니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드는데 참여해 나중에는 지브리의 프로듀서가 됐다. 프로듀서는 극의 방향을 정하고, 애니메이션 제작, 개봉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조율한다. 편집자 출신인 스즈키가 프로듀서를 맡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나 동시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미야자키는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디테일에 치중하지만 상대적으로 스토리 구성은 느슨하다. 강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장대한 모험 이야기와 비행 물체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반면 다카하타는 극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보통사람의 희로애락을 그린다. 눈빛과 동작 만으로 진행되는 신이 많고, 원전이 있는 작품을 재해석한다. 이렇게 다른 성향을 가진 감독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스즈키이다. 그들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철학을 공유한다. 지브리에는 반전(反戰),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인간애 등 강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 많은데, 이들이 그런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지브리의 설립을 지원한 도쿠마 쇼텐의 도쿠마 사장이나 니혼TV의 우지이에 회장, 다카하타도 일본 공산당에서 활동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계급 타파와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경고하며 보수적인 일본 분위기에 펀치를 날렸다.

 

원점은 나우시카

지브리 스튜디오의 공식적 첫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이다. 그러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이하 나우시카)>가 없었다면 지금의 지브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우시카가 성공했기 때문에 스튜디오를 설립할 수 있었고, 그 명성 때문에 다른 장편 애니를 만들 수 있었다. 나우시카는 이전의 장편 애니메이션과 달리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이상적인 소녀, 동시에 장대한 모험 이야기가 어우러졌고, 흥행과 평가를 모두 잡았다.

 

스튜디오 지브리 초기작(왼쪽 나우시카, 오른쪽 라퓨타), 사진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나우시카 성공 이후에도 지브리에 탄탄대로가 펼쳐진 건 아니다. 원전이 없는 오리지널 장편 애니는 흥행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지브리는 제작비를 공수하기 어려웠다. 이후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경영상으로도 안정되어 갔다. 스튜디오 건물을 만들고, 제작팀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으며, 일본에서는 드물게 여성친화적 정책(사내 탁아소 설립, 여자화장실 면적 확대 등)도 도입했다.

 

미야자키씨가 항상 말하는 영화 제작의 3대 원칙이 있다.
'재미있을 것', '만들만한 가치가 있을 것', '돈을 벌 것'
영화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주제가 좋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것도 장사이므로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

-스즈키 토시오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장 스토리 :任事道樂 일은 도락이다” 중에서

 

지브리는 일본 내외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만큼 지출이 많았기 때문에 회사 자체는 늘 위태로웠다. 또한 지브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흥행과 작품성에 관해서도 기준이 높아졌다. 다른 영화나 애니에 비해 엄청나게 흥행해도 지브리에 대한 기준은 언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고, 이를 뛰어넘지 못하면 “패배한 것”으로 다뤄졌다.

 

2010년대 들어 지브리의 주역들은 너무 많이 늙었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세상을 떠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체력 문제로 은퇴를 선언했다. 포스트 미야자키, 지브리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몇몇 감독이 있었으나 3두 체제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지브리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걸까?

 

 

지브리의 성공 요인: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만의 역량

서정성을 강조한 아날로그 2D 작품

지브리 작품은 CG가 아닌 손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CG를 사용하긴 하지만 다른 애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게 사용한다. 지브리는 날카로운 선이 아닌 서정성이 강조되는 선을 선호하며, 깔끔한 그림체가 주류를 이루는 최근 애니메이션 계에서 지브리가 다른 애니와 가장 차별되는 점일 것이다. CG가 아닌 아날로그라도 레이아웃을 강조해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엄청난 매수의 프레임을 사용한다. 3D는 이미 픽사와 디즈니를 이길 수 없다. 잘하는 것에 집중해 특유의 세계를 구축했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다

기본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지만 단순한 모험 이야기, 러브스토리가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 라퓨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환경 파괴, 기술 주도 사회에 대해 경고한다. 붉은 돼지, 키키, 하울에서는 생활력 강한 여성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이 소규모 마니아를 타깃으로 한정적인 주제를 다루거나 아예 어린이용으로 만드는 것과 달리 지브리의 타깃은 “모든 성별과 연령의 대중"이다. 온 가족이 봐도 부담 없는 내용과 작화, 그럼에도 보고 나서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 작품. 그것이 지브리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왼쪽 모노노케 히메 오른쪽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사진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지브리에는 백마 탄 왕자님이 없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지브리에는 백마 탄 왕자님이 없다

나를 구해준 건 혹시 왕자님? 그녀는 도망쳤다. 미로 같이 어두운 골목에서 온 힘을 다해 뛰었지만 곧 잡힐 것 같았다. 그 순간 몸이 떠올랐다. 땅을 달리던 발은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그와 함

moku-culture.tistory.com

 

 

작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

지브리의 작품은 미야자키, 다카하타가 전후 일본 사회를 살아가면서 고집을 갖고 만들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고, 엄청난 경제 성장과 그 폐해도 목격했다. 그들에게는 어떻게든 제작비를 구해주는 지인들이 있었고, 개봉일을 늦출지언정 작품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영화가 망할 수도 있지만 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패가 두려워 안이한 선택을 하는 대신 앞만 보고 돌격해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말한 것처럼 단카이 세대(전쟁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실패해서는 안된다”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사회가 안정되어 갈수록 성공의 기준은 높아졌고, 돈을 주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은 채 고집을 갖고 작품이나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왼쪽 붉은 돼지, 오른쪽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사진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장점이자 한계: 개인의 재능에 의지한 공방

지브리의 관계자들은 지브리를 소규모 동네 공장으로 부른다. 그런 측면에서 지브리는 애니메이션 공장으로 불리는 디즈니와 대척점에 있다.

 

먼저 디즈니의 제작 방식을 살펴보면 기획단계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걸 다수의 시나리오 작가에게 주어 여러 스토리를 만든다. 여러 시나리오에서 좋은 장면은 취사선택해 다시 다수의 시나리오 작가가 완성된 스토리를 만든다. 각본, 연출, 작화 등 모든 부분이 분업화되어 있다. 공장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개인의 반짝이는 개성이 드러나진 않지만 평이한 작품은 지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 지브리는 개인의 재능에 의존한 공방(工房)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기획, 각본, 작화, 연출을 모두 혼자서 한다. 그는 천재다. 심지어 성실한 천재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터가 하루 평균 10장을 그려낼 때, 그는 30-50장을 그려낸다. 그림을 원래 잘 그리지만 움직임과 레이아웃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그림실력이 점점 향상된다. 안타깝게도 지브리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미야자키가 그림을 그린다는 소문도 있다. 성실한 천재는 실력있는 후배를 보면 더욱 연구를 해서 그보다 더 잘 그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브리의 작품에는 미야자키의 개성이 듬뿍 담겨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

 

그렇지만 소규모 공방인 지브리의 방식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미야자키 본인의 능력으로 이끌어왔기 때문에 미야자키가 없으면 더 이상 지브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장인정신으로 수많은 컷을 직접 그려내지만 그것은 비용 측면에서, 작업 효율성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한 작품 하나만 가지고, 개봉일을 늦추거나 제작비를 마냥 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던 시대도 지났다. 이제는 자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보다 많은 간섭을 받아야 하며, 모두를 만족시키는 평이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브리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두가지 이유에 기인하는데, 1) 미야자키 하야오가 너무 뛰어난 천재이기 때문이고, 2) 흥행과 작품성을 위해 미야자키가 아니면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술한대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성실한 천재를 옆에서 보던 사람들은 질려서 스스로 나가버리거나 모든 것을 다 하는 미야자키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어서 지브리를 나갔다. 또한 외부 투자자들도 이미 작품성과 흥행 실적이 검증된 미야자키가 아니면 쉽게 거액을 투자하지 않았다. 결국 내외부의 압력, 스스로의 넘쳐나는 호기심으로 인해 미야자키 독주 체제가 이어졌다.

 

지브리에서도 후계자를 만들려는 노력은 했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래 표는 지브리 홈페이지를 바탕으로 만든 지브리 작품 연표이다. 지금까지 미야자키와 다카하타를 제외하면 감독을 맡은 인원은 5-6명이며, 그나마도 2편 이상을 담당한 경우는 미야자키 고로(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2명뿐이다. 미야자키 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경력이 없는데도 느닷없이 감독으로 발탁됐고, 요네바야시는 그림은 정말 잘 그리지만 본인이 인정한 대로 철학과 사상이 깊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재능 부족은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 흥행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지브리는 더 이상 지브리의 명성을 이어갈 수 없다. 이는 지브리 내부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고, 그 결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와 맞물려 스튜디오를 해체했다.

 

제목 한국어 제목 공개 감독 프로듀서
風の谷のナウシカ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84 宮崎 駿
(미야자키 하야오)
高畑 勲
天空の城ラピュタ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宮崎 駿 高畑 勲
火垂るの墓 반딧불이의 묘 1988 高畑 勲
(다카하타 이사오)
 
となりのトトロ 이웃집 토토로 1988 宮崎 駿  
魔女の宅急便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宮崎 駿 宮崎 駿
おもひでぽろぽろ 추억은 방울방울 1991 高畑 勲 鈴木敏夫
(스즈키 토시오)
紅の豚 붉은 돼지 1992 宮崎 駿 鈴木敏夫
海がきこえる 바다가 들린다 1993 望月智充
(모치즈키 토모미)
 
平成狸合戦ぽんぽこ 헤이세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1994 高畑 勲 鈴木敏夫
On Your Mark On Your Mark 1995 宮崎 駿  
耳をすませば 귀를 기울이면 1995 近藤喜文
(콘도 요시후미)
鈴木敏夫
もののけ姫 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1997 宮崎 駿 鈴木敏夫
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 이웃집 야마다 군 1999 高畑 勲 鈴木敏夫
千と千尋の神隠し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宮崎 駿 鈴木敏夫
ギブリーズ episode 2 기블리즈 에피소드2 2002   鈴木敏夫
猫の恩返し 고양이의 보은 2002 森田宏幸
(모리타 히로유키)
鈴木敏夫
ハウルの動く城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宮崎 駿 鈴木敏夫
ゲド戦記 게드 전기 2006 宮崎吾朗
(미야자키 고로)
鈴木敏夫
崖の上のポニョ 벼랑 위의 포뇨 2008 宮崎 駿 鈴木敏夫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마루 밑 아리에티 2010 米林宏昌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鈴木敏夫
コクリコ坂から 고쿠리코의 언덕에서 2011 宮崎吾朗 鈴木敏夫
風立ちぬ 바람이 분다 2013 宮崎 駿 鈴木敏夫
かぐや姫の物語 가구야 공주 이야기 2013 高畑 勲 西村義明
思い出のマーニー 추억의 마니 2014 米林宏昌 西村義明
レッドタートル ある島の物語 붉은 거북 2016 マイケル・デュドク・ドゥ・ヴィット
(Michaël Dudok de Wit)
高畑 勲

 

 

약 30여 년 동안 엄청난 작품을 쏟아냈던 지브리. 누가, 언제 봐도 감동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그런 지브리는 스스로의 성공 공식 때문에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자료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장 스토리 :任事道樂 일은 도락이다(저: 스즈키 토시오)
지브리의 철학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저: 스즈키 토시오)
지브리의 문학(저: 스즈키 토시오)
지브리의 천재들(저: 스즈키 토시오)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 자료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https://www.ghibli.jp/

 

 

スタジオジブリ|STUDIO GHIBLI

株式会社スタジオジブリの公式サイトです。新作の制作状況をはじめ、出版物、イベントなど、スタジオジブリに関係するさまざまな情報を、手づくりで皆さんにお届けしています。

www.ghibli.jp

 

본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첨부 사진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에 귀속됩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에서는 작품 관련 사진(포스터 등)을 "상식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써주세요"라면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