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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에이프만 발레단(www.eifmanballet.ru)

1.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발레로

 

발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Beyond Sin)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보리스 에이프만(Boris Eifman)의 발레단이 공연한 작품이다. 발레는 방대한 양의 원작에서 원죄와 구원에 집중해 인물과 장면을 선별했다

 

아버지 표도르가 ‘저열한 본능’을 상징한다면, 장남 드미트리는 ‘매우 러시아적인, 본능과 순수에서 갈등하는 양면적인 인간’을 보여준다. 차남인 이반은 ‘이성’을, 삼남인 알료샤는 ‘신성’을 상징한다. 1막에서는 각 인물의 특성과 아버지가 물려준 저열한 본능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자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2막에서는 제목인 "Beyond sin"에서 알 수 있듯이 원죄를 넘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고민을 보여준다.

 

2. 에이프만 발레의 특징

 

1) 러시아 고전에 집중

에이프만은 <안나 카레리나>, <갈매기> 등 철학과 사상이 담긴 러시아 문호의 작품을 발레로 만들어 왔다. 음악도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무소로그스키 등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을 차용한다. 이를 통해 러시아 저변에 깔린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감정을 드러낸다.

 

2) 고전 발레의 현대적 해석

에이프만은 고전 발레의 중심지 러시아에서 “현대적인” 발레의 선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발레를 현대 발레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는 기존 발레 공식을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식의 포스트모더니즘 발레를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의 내용이나 전개, 기본 동작은 고전발레의 틀을 유지하며, 대신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장된 몸짓과 표정을 추구한다. 그는 슬픈 감정일수록 더욱 복잡한 동작을 이용하여 나타내야 한다고 말한다.

 

3. 단순하지만 상징적인 무대, 의상, 소품

 

“Beyond sin”은 에이프만의 발레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무대는 가운데에 나선형 계단을 가진 간단한 건물 얼개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의 특성에 맞춰 조명 색을 다르게 사용하는데, 그루셴카는 정념의 붉은색으로 표현한다. 이반은 이성의 파란색으로 표현되다가 미쳐가며 환영이 보일 때는 초록색을 사용한다. 알료샤와 예수가 나타나는 부분은 눈이 부시게 밝은 흰색을 사용한다.

 

의상도 마찬가지로 매우 단순하며, 색상으로 인물의 특징과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인물의 심경이 변화하면 의상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데, 알료샤가 본능과 싸우는 부분에서 웃옷이 벗겨지고, 그루센카가 드미트리에게 빠지면서 점차 몸을 가리는 의상을 입게 된다.

 

무대와 의상보다 더욱 상징성을 갖는 것이 소품이다. 테이블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갈등의 장소이며, 끈과 그물은 인간을 옭아매는 원죄를 상징한다.

 

사진 출처: 에이프만 발레단(www.eifmanballet.ru)

 

4. 복잡하고, 격정적인 안무

 

반면 안무는 매우 과격하고, 복잡하며, 동작이 크다. 아크로바틱을 연상시키는 어려운 동작과 고전발레에서는 보기 힘든 남남(男男) 리프트도 등장한다. 특히 인물의 대립을 나타내는 장면에서 대칭적인 안무를 활용한다. 표도르와 아들들이 대립할 때 서로 몸을 얽어 3각형을 만드는데, 이는 그들이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피”를 나타낸다.

 

군무를 통해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2막에서 <예수와 대심문관의 논쟁>을 군무로 표현했는데, 대심문관이 독재와 압제를 주장할 때는 마치 톱니바퀴가 맞아 들어가듯 군무가 이어지지만 예수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할 때, 무용수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결국 예수가 대심문관에 의해 쫓겨나자 다시 톱니바퀴 같은 군무가 이어지는데, 이 군무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인간의 슬픈 모습이라는 해당 부분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마지막 부분에 환속한 알료샤가 민중과 함께 춤을 춘 것은 그가 민중을 위해 한 알의 밀알로 희생하겠다는 의지로 보이며, 이는 십자가를 지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인간의 원죄와 신에 의한 구원이라는 철학적인 주제가 안무와 음악만으로 충분히 전달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에이프만의 표현 방식은 관념을 시각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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