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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탐낸 별장

석파정(石坡亭)은 부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별장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6호이다. 북악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당에 서면 북악산과 북한산, 인왕산까지 두루 보인다. 석파(石坡)는 흥선대원군의 아호(雅號)로, 그 때문에 석파정은 ‘왕이 사랑한 정원’, ‘흥선대원군 별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원래부터 흥선대원군의 별장은 아니었다.

 

원래 이곳은 철종 시절 영의정까지 지낸 안동 김 씨 김홍근의 별서로 삼계동(三溪洞)으로 불렸다. 황현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대원군은 김홍근에게 별장을 팔아달라고 사정도 하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대원군은 김홍근에게 딱 하루만 빌려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하루 정도 빌려달라’는 청은 들어주는 것이 관례였기에 김홍근은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빌려주었다. 그런데 ‘그 하루'에 대원군이 아들 고종과 함께 별채에 묵었다. 이건 묘수라 쓰고, 반칙이라 부른다. 임금님이 잠 들었던 곳을 어찌 신하가 소유할 수 있으랴. 김홍근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별장을 헌납해야 했다. 이후 대원군은 이곳을 석파정이라 부르고 자신의 별장으로 삼았다고 한다.

 

석파정 천세송과 북악산, 본인촬영

 

잊혀진 공간에서 모두의 쉼터로

흥선대원군 이후 왕의 후손들이 이곳에 머물렀지만 나라가 망하면서 주인 잃은 공간이 되었다. 6.25 이후에는 전쟁고아를 위한 보육원으로 운영되기도 했는데, 곧 잊혀지게 됐다.

 

주인없이 방치되었던 곳을 석파문화원이 인수했고, 죽어있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원래 석파정에는 건물이 8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사랑채, 안채, 별채와 청나라풍 정자인 석파정 뿐이다. 석파문화원은 남은 건물을 보수하고, 깨끗한 산책로를 만들고, 숲을 다듬었다.

 

그렇게 석파정은 부암동 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미술관(석파문화원이 운영하는 사립미술관) 3층에 연결된 출구로 나오면 도심 속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랑채에서 출발해 석파정과 너럭바위까지 가면 구름길과 물길이라는 2가지 산책로를 둘러볼 수 있다. 벤치에 앉아 북악산 풍경을 바라보며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흥선대원군이 왜 그렇게 이곳을 탐했는지 알 것 같다.

 

석파정 사랑채와 천세송, 본인촬영

 

석파정만 1회 입장하려면 5천 원짜리 입장권을 사야 한다. 서울미술관 전시 입장권(11,000원)을 사면 석파정까지 같이 둘러볼 수 있는데, 이 입장권이 발행된 달에는 여러 번 입장할 수 있다. 즉, 4월 1일에 표를 샀으면 4월 한 달간은 서울미술관과 석파정을 여러 번 방문할 수 있다. 부암동이 접근성이 좋은 곳은 아니지만 한 달에 2번 이상 올 수 있다면 가성비는 매우 뛰어나다!

 

대원군이 억지를 써서 빼앗은 별장이 이제는 시민의 쉼터가 되었다. 세상을 호령했던 권력자는 떠났지만 그 자리는 계속 북악산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이 글은 석파정 서울미술관 관련 자료(리플렛, 홈페이지)를 참조해서 작성했습니다. 이 글의 상업적 이용과 무단 도용을 금지합니다. 사진의 저작권은 사진 출처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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