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과 눅눅한 공기가 목을 조르는 어느 여름날, 도쿄. 평범한 부부가 무참히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용의자는 현장에 분노(怒)라는 글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1년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3명의 남자를 둘러싸고 잔인한 질문이 오간다.
치바(千葉). 항구에서 일하는 마키 요헤이(와타나베 켄)에게는 살짝 모자라는 딸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가 있다. 가출했던 아이코는 도쿄에서 해맑게 웃으며 몸을 팔았고, 마키는 그런 아이코를 집으로 데려왔다. 딸을 사랑하지만 걱정스러우면서도 불안한 아버지. 그런 부녀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마츠야마 켄이치)이 나타난다. 사채 빚에 쫓겨 항구까지 흘러 들어왔다는 그는 아이코와 친해지고, 동거까지 하게 된다. 용의자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그 청년을 의심하고, 모자란 딸이 제대로 된 남자를 골랐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도쿄(東京). 평범한 샐러리맨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게이바에서 나오토(아야노 고)를 만난다. 둘은 곧 동거를 시작하지만 유마는 자신이 게이임을 주변에 숨기고, 나오토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유마에게 말하지 않는다. 유마는 자신이 게이임이 밝혀질까봐, 나오토가 살인자일까 봐, 게다가 게이를 가장한 이성애자일까 봐 전전긍긍한다.
오키나와(沖縄). 엄마를 따라 오키나와로 이사 온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친구인 타츠야를 따라 무인도에 갔다가 배낭여행 중이라는 다나카(모리야마 미라이)를 만난다. 일본 땅이지만 미군의 땅인 오키나와에서 이즈미는 상처를 입는다.
용의자는 어째서 잔인하게 부부를 살해한 것일까? 어떤 원한이 있었던 것일까? 피해자는 더위에 시달린 청년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대접했을 뿐이었다. 구원과도 같은 그 물 한잔에 용의자는 고마움보다는 비참함을 느꼈다. 세상이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비웃는다고 느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해 분노하면서 살인을 했고, 그런 자신에게 다시금 분노했다.
그들은 분노한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 분노하고, 솔직하지 못한 상대에게 분노하고, 사랑한다면서 믿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다시 분노한다. 그렇게 믿었던 자도, 믿지 못했던 자도 상처를 입었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담긴 엑스레이 사진이 발견되어 마리아 사랑 병원이 발칵 뒤집어진다. 그건 누구의 사진일까? 간호사인 윤영은 그 사진이 자신과 남자 친구 성원의 것이라 믿고, 창피해서 병원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엑스레이 사진으로 시작된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단체로 결근을 한 사람들이 모두 꾀병?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을 찾아온 남자가 살인자? 잃어버린 반지를 동료가 훔쳤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사실은 데이트 폭력범?
자잘한 의심이 쌓여가고, 관계에 균열을 만든다. 의심이라는 싱크홀에 빠진 사람들은 주변을,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렇게 소중한 것들을 잃는다.
메기는 지진을 예감한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메기가 예감하는 지진은 지면의 물리적 붕괴뿐 아니라 사람들 간의 심리적 균열, 즉 믿음의 상실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싱크홀을 메우기 위해 흙을 퍼부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고, 결국 더 큰 싱크홀이 생겼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부원장(문소리)의 대사 중
믿음은 얇고, 의심은 깊다.
믿음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쌓인다. 하지만 의심은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생겨나 혼자서 제멋대로 빠르게 자란다. 의심이 주변을,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고, 제대로 질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상처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을,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