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728x90
반응형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1. 사람은 언제 사라지는가

 

죽는다는 건 뭘까? 그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영화의 대사로도 나와있지만 멕시코에서는 죽음을 3단계로 나눠서 본다고 한다. 육체가 숨을 거둘 때 생물학적으로 죽고, 장례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갈 때 사회적으로 죽으며, 더 이상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영혼이 소멸한다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단지 숨을 거두었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를 기억한다면 매년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에 다시 만날 수 있다. 멕시코의 고유 명절인 망자의 날은 죽은 사람이 정해진 기간에 이승에 다녀간다는 점 때문에 일본의 오봉(お盆)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의 추석도 조상을 기억하고, 새로운 곡식을 바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소멸을 두려워한다. 소멸 그 자체가 두려울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세계라는 점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계속 기억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누그러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문화권에서 조상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명절을 만들어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두려운 것은 육체가 숨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이다.

 

2. 축복과 기억

 

사람들은 후손들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축복이라는 대가를 만들어냈다. 조상에게 축복을 받으려면 그를 기억하고, 정기적으로 추모해야 한다. 그것이 제사가 되고, 망자의 날이 된다. 영화에서 미겔이 집에 돌아가려면 죽은 가족들에게 축복을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미겔에게 다시는 음악을 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건다.

 

축복과 기억은 등가교환해야만 하는 것일까?

축복해주지 않는 조상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기억해주지 않는 후손은 축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3. 나의 꿈과 나의 가족

 

동시에 영화는 개인의 꿈과 가족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미겔의 가족들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미겔의 꿈에 반대하고, 미겔은 가족따윈 필요 없다”며 뛰쳐나간다. 하지만 음악 때문에 가족을 떠난 헥토르는 다시는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그의 꿈을 포기하게 하고 상처를 준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나의 꿈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게 되는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당한 길을 갔는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4. 기억할게다시 만날 때까지

 

단순히 피가 섞였기 때문에 가족이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건 아니다.

가족 간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한다. 그 어떤 계약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무조건”의 마법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으로 축복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억한다.

 

영화 제목이 어째서 <remember me>가 아닌지 의문이다(일본어판의 제목은 리멤버 미이다). 코코가 영화에서 중요한 매개체이긴 하지만 영화 주제를 제일 잘 나타내는 건 기억이다. 헥토르가 딸인 코코에게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기억해줘, 너를 다시 품에 안을 때까지 기억해 달라고 하는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만날 때까지 기억할게. 많이 사랑해.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