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영화이다.
감독은 영화를 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고, 멘토가 세상을 떠나는 등 일련의 시련을 겪었던 그때, 이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이 왔다. JR 규슈의 기차 노선이 남북으로 완전 개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감독이 이러한 기획물을 받아들인 것은 처음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들은 죽음과 사회문제를 날 것으로 다루어 왔다. 어느 편도 들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날 선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런 감독이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감독은 가족과 세상에 대해 조금은 힘을 빼고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묵직하지만 한편으론 조용히 미소를 머금으면서 대상을 바라본다.
7명의 아이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길을 나선다. 가고시마와 하카타에서 출발한 신칸센이 구마모토 근방에서 교차할 때 발생하는 엄청난 스파크(!!)가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거라 생각하면서 모르는 동네를 헤맨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깃발에 적고, 열차가 지나갈 때 목이 터지도록 소원을 외친다.
그런데… 아예 소원을 말하지 않거나 다른 소원을 말한다. 아이들은 소원을 떠올리고, 그걸 외치러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노력하며, 달리는 사이에 세상의 어떤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어떤 부분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가족이 모여 살았으면 좋겠지만 세상을 위해 화산이 터져서는 안 되고, 여선생님과 결혼하는 것보다는 아빠가 도박을 끊었으면 좋겠다. 여배우가 되고 싶으면 용기를 내어 오디션을 보러 다녀야 한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걸 위해 보냈던 시간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아이들은 배우고, 그만큼 성장해간다.
감독의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는 ‘부재(不在)’이다. 전작에서 죽음, 실종 등을 무겁게 다뤘다면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라곤 강아지 마블 정도로 그친다. 하지만 부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부모의 이혼으로 형제는 떨어져서 산다. 외할아버지가 만든 전통 떡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손님이 사라지고, 동네도 점점 쇠락해간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각각의 빈자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는다.
빈자리를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오다기리 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가사와 마사미, 오오츠카 네네 등 유명 배우들이 나오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인 <아무도 모른다>와 비교된다. 전작에서 감독은 아이들에게 어떤 동정이나 특정한 시선을 투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적>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도전을 모르는 척 눈감아주고, 때로는 지원군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따뜻하게 바라본다.
어쩌면 지겨울 수도 있는 일상이 화산재처럼 쌓인다. 그런 일상을 쌓을 수 있다는 것, 그 안에서 조금씩 커간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닐까.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바꾸고 싶지 않은 일상의 행복 (0) | 2021.01.27 |
---|---|
영화 소울(Soul, 2020)-우리는 이미 바다에 있다 (0) | 2021.01.21 |
코코(COCO, 2017)-Remember me (0) | 2020.11.11 |
로건(Logan, 2017)-잘 가요 울버린 (0) | 2020.11.02 |
남매의 여름 밤(2020)-그 해 여름, 한 뼘만큼 성장했다 (0) | 2020.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