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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1. 닮은 듯 다른 영화

나에게 있어 카모메 식당(2006)과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2010)는 잠이 안 올 때 그저 틀어놓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화면이다. 두 영화 모두 엄청난 서사나 기승전결이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저 잔잔한 화면과 ASMR 수준의 음악이 마음을 달래준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 특히 카모메 식당은 배우는 물론 감독과 제작까지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음식을 다루고 있다.

 

카모메 식당에서 오니기리, 쇼가야키, 시나몬 롤, 커피 등 음식이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반해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는 커피와 디저트가 그저 부수적인 장치이다. 오히려 카페를 채우는 다양한 잡동사니(??)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카모메 식당의 화면은 비교적 정적이다.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쇼윈도 너머를 바라보거나 수영장에서 천천히 수영을 한다. 경쟁하듯 밀치며 가지 않는다. 사치에는 밤마다 운동 삼아 공수도 동작을 취하지만 그저 거실에서 상체를 움직이는 정도다. 반면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는 자전거와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누빈다. 

 

두 영화가 색을 이용하는 방법도 다르다. 카모메 식당은 원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시장의 식료품들이, 사치에가 수영하는 수영장의 쨍한 물빛이, 소품(식기, 주방용품)들이, 그리고 등장인물의 의상도 원색이 많다. 특히 마지막에 4명의 여자가 일광욕을 하는 장면에서는 하나같이 원색의 화려한 옷이었다. 그럼에도 뭔가 강하게 자극한다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화려한 색감은 정적인 화면과 균형을 맞추면서 상황을 묘사해주는 도구이다. 반면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무채색 옷을 많이 입는다. 카페도 인물도 색감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하긴 동적인 화면에 원색까지 더해지면 매우 어지러워졌을 것이다. 대신 빛을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 인물들의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 카페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빛, 밤에 켜놓은 카페 조명, 도시를 채우는 건물의 야경 등 빛이 인물의 이야기에서 여백을 채워준다.

 

2. 떠나 온 사람과 떠나는 사람

카모메 식당은 떠나 온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이다. 사치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핀란드에서 일본 가정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미도리도 무슨 사연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눈감고 지도에서 찍은 곳이 핀란드라 그곳까지 흘러왔다. 마사코는 부모의 간병 때문에 지쳐서 핀란드까지 황망하게 쫓기듯 왔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그걸 캐묻거나 언제 돌아가냐고 채근하기보다 그냥 지금 그대로 받아들인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 카페 주인이 두얼은 영화 마지막에 타이페이를 떠나 세계여행을 떠난다. 두얼은 카페에서 남의 이야기만 듣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서 타이페이를 떠나게 된다. 

 

3. 심리적 가치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는 카모메 식당의 첫손님인 토미에게 앞으로도 계속 공짜 커피를 줄 거라고 말한다. 가챠맨 주제가를 가르쳐 준 미도리에게는 "가챠맨 주제가를 다 아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라며 집을 내어주고, 같이 일한다. 장사가 좀 더 잘되게끔 이런저런 변화를 제안하는 미도리에게 사치에는 "일본 가정식을 대접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 두얼은 얼떨결에 처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물건이 생겨버린다. 교통사고 수리금 대신에 카라를 트럭 가득 받아오고, 친구들이 개업을 축하한다며 들고 온 잡동사니는 카페를 가득 채운다. 이 물건들을 도대체 얼마에 팔아야 할지 알 수 없고, 어디에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물물교환을 시작한다. 물물교환에서 물건의 가치는 제 3자가 아닌 거래 당사자 스스로가 매기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태국 음식 레시피는 남의 집 하수구 청소를 대신해 줄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파리의 한정판 핸드폰 줄은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와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물건을 이야기와 그림과 편지와 노래로 바꾼다. 물물교환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물건의 가치가 언제부터 돈으로 측정되었을까? 그나마 돈이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어떤 물건, 서비스가 나에게 주는 가치는 기본적으로 심리적 가치로 측정된다. 누군가는 샤넬백을 그저 가죽 가방의 원가로만 따지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 되기도 한다. 허름한 책 한권은 폐지값도 제대로 못 받지만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그 물건이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가 여부에 달려있다. 

 

4.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게요 

카모메 식당에서는 그저 가만히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사치에는 미도리에게 무슨 사연으로 핀란드까지 왔는지 캐묻지 않는다. 마사코는 리사의 슬픈 가정사를 묵묵히 들어준다. 핀란드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그저 끝까지 다 듣고, 토닥여준다. 

 

두얼의 까페에 35개의 비누와 그에 해당하는 도시 이야기를 가져온 남자는 두얼에게 심리적 가치와 스토리의 힘을 알려준다. 손님들은 물물교환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남의 이야기를 듣던 두얼은 이제 자기의 이야기를 찾고자 여행을 떠난다. 영화 곳곳에 타이페이의 일반 시민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세계일주와 공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건지? 각자의 선택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무엇도 강요할 것 없이 그저 들어주고, 토닥여주고,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도록 지켜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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