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이 이 영화의 원작이다. 일본 신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 전당이 합작하여, 2008년, 2011년, 2016년에 연극 무대에 올렸다. 자이니치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배경은 고도성장기인 1969년 일본 오사카 이타미시. 이타미 국제공항 근처 나카무라 지구에 야키니쿠 드래곤이 있다. 주인공 김용길(金龍吉)의 이름을 따서 야니키쿠 드래곤. 김용길은 태평양 전쟁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왼팔을 잃는다. 해방 이후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제주도는 4.3 사건으로 피폐해지고, 일가친척은 모두 죽는다. 돌아갈 곳이 없는 용길은 일본에서 살아나갈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처지인 고영순과 만나 세 명의 딸(시즈카, 리카, 미카)과 한 명의 아들(토키오)를 키우고 있다.
극은 토키오의 독백 "나는 이 동네가 정말 싫습니다."로 시작된다.
시즈카는 절름발이. 어렸을 때 테츠오와 함께 활주로 구경을 갔다가 다리가 부러졌다. 그런 시즈카를 오랫동안 좋아하면서도 연민인지 사랑인지 망설이는 테츠오는 결국 리카와 결혼을 한다. 자신의 남편인 테츠오가 언니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것에 절망한 리카는 한국에서 온 일백과 불륜을 저지른다. 한편 가수가 꿈인 미카는 클럽 지배인인 하세가와와 사귀지만, 하세가와도 부인이 있는 유부남이다.
테츠오는 대학까지 나왔지만 자이니치이기에 제대로 취직이 안된다. 활주로 공사장에서도 쫓겨나고, 시청이며, 구청이며 어디서든 싸움만 하곤한다. 앞으로도 계속 일본에서 살아가려면 일본의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용길의 주장에 따라 토키오는 유럽 사립 중학교에 진학하지만, 심한 이지메를 당한다. 결국 실어증에 걸리고, 등교 거부를 한다. 야키니쿠 드래곤이 있는 동네는 국유지로 곧 빈민촌을 철거할 예정이다. 시청에서는 강제 철거 되기 전에 빨리 떠나라고 재촉을 한다.
시즈카는 동생을 위해 테츠오를 외면하고, 한국에서 온 윤대수와 약혼하지만 결국 테츠오의 고백에 오열하고 만다. 한편 토키오는 학교에서 유급을 당하고, 전학도 하지말고 계속 학교에 가라는 아버지 용길의 말에 좌절하여 자살하고 만다.
토키오가 죽고 난 다음 해, 다시 봄. 시즈카는 테츠오와 함께 북으로(재일조선인 북송), 리카는 일백과 함께 남으로, 미카는 하세가와와 결혼해 일본에 남는다. 용길과 영순도 헐리는 빈민가를 뒤로하고 떠나며 가족은 뿔뿔히 흩어진다.
그리고 토키오의 독백, "아버지, 어머니, 사실 저는 이 동네가 좋았습니다"로 극이 마무리된다.
시즈카와 테츠오는 서로 좋아하지만 시즈카의 다리가 부러진 이후로 연민과 동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결국 리카와 결혼을 하고, 이것이 모두를 상처받게 한다. 일본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기에 일본의 교육의 받아야 한다는 용길의 주장은 맞지만, 그것은 토키오가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용길은 간장가게 사토에게 돈을 주고 땅을 샀지만, 그건 국유지이고 애초에 거래를 하면 안되는 땅이었다.
모두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그리고 단추는 다시 끼우면 되지만, 한번 꼬인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회복할 수 없는 길로 가게 한다.
1)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
재일교포는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여기에서 다룰 자이니치(在日)이며, 후자는 1980년대 이후에 경제적인 목적으로 일본으로 이주한 이민자인 뉴커머이다.
자이니치. 해방 전에 징용, 경제적인 목적으로 일본에 정착하게 된 조선인이다. 일부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 전후하여 일본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극에 나오는 영순도 4.3 사건과 6.25를 피해 일본으로 이주한 것으로 나와있다.
당신은 자이니치에 대해 알고있는가? 그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정확하게는 자이니치는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기 전에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다. 조선인이었고, 조선이 없어진 채로 전쟁이 끝났다. 그래서 순식간에 무국적자가 되었다. 국가가 없어졌으니 국적이 없고, 돌아가고 싶어도 여권이 없다. 한국은 가난해서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일본은 이들을 쓰레기 취급했다.
현재 자이니치는 크게 한국 국적을 선택한 사람, 북한 국적을 선택한 사람,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 여전히 조선적(무국적이나 마찬가지이다)을 가진 사람으로 나뉜다. 한국이 북한보다 잘 살기 시작한 게 1980년대부터이며, 일본 내에서 조총련의 위상을 고려할 때, 꽤 오랫동안 한국 국적자의 수는 많지 않았다. 한국 국적을 선택하는 자이니치가 증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버림받고, 일본에서도 핍박받는 제3 의 영역에 놓여있다. 자신의 이름을 쓰지도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도 없다.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 정의신 연출은 자신을 난민과 같다고 표현한다.
2) 돌아갈 곳이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해외동포는 일본에서는 뉴커머를 일컫는다.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선거권도 있다. 그리고 여차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자이니치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에서의 터전도 파괴되었으며, 무엇보다 국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내 땅에 있는 입들을 먹여 살리기도 바빴으니, 일본에서 몇십만이 돌아온다는데 반가웠을리 없다. 그 때는 그렇게 외면하고들 살았다.
그래서 자이니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일본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3) 차별, 따돌림
자이니치가 겪은 차별과 따돌림은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평생을 일본에서 살았음에도 선거권도 없고, 외국인으로 지문 채취도 따로 받아야 한다.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되고,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도 없다. 극 중에서 토키오가 자살을 선택한 건,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류사회에 편입해서 살 수 없다. 초기 자이니치들은 고물상(강상중 교수), 술집, 파칭코(마루한), 야쿠자, 음식점 등 바닥에서의 삶에서만 전전했다. 자이니치 출신 중에 운동선수가 유난히 많은 건 그나마 그 분야가 상대적으로"실력"이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교수, 기업가 등 사회 주류에서 자이니치임을 주장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손 마사요시씨가 '손'이라는 성을 유지한 것은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지 그 자신이 한국에 애틋한 정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자이니치임을 나타내는 순간 일본 주류사회로 진출할 수 없다.
4) 귀국운동
이런 자이니치를 꼬드긴 것이 북한이다. 재일 조선인 북송사건. 북한과 일본이 짜고 친 고스톱에 국제 적십자사가 거들었다. 재일 조선인은 일본 내에서 골치거리였다. 가난하고, 떼로 몰려다니며 시위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이들을 치워버리고 싶었던 일본 정부와 조총련의 돈과 기술이 필요했던 북한이 북송 작업을 벌인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84년까지 약 9만 여명이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듣고, 북한행 배에 탄다. 그리고 그들은 북한 내에서 또 다른 차별과 핍박을 받고, 거의 대부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다. 결론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다. 이런 북한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국제적십자사는 무려 20여년동안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재일 조선인을 북한에 보내는 걸 도왔다.
이걸 더 쓰면 너무 길어지니 이해를 도울 몇가지 영화를 추천한다.
-디어 평양
-가족의 나라
-박치기!
정의신 연출은 일본의 유명한 연출가이자 자이니치이다. 민감한 문제인 자이니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가족을 소재로 깔끔하게 극을 이끌어간다. 최양일 감독과 함께 "피와 뼈",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작업했고, 쿠사나기 츠요시, 차승원, 카가와 테루유키, 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나에게 불을 전차를"을 무대에 올렸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야기"라 했다. 자이니치도 4세대가 넘어가기에 점차 그 존재가 희미해지기 때문이리라.
비단 정의신뿐만 아니라 연극 연출 출신인 영화감독(장진, 미타니 코기)이 만든 영화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영화가 아니라 연극을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즉, 그냥 연극을 필름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연극은 시공간의 제약이 크지만 영화는 시공간을 이용하는 데 비교적 자유로움에도 한정적인 공간에서 씬을 이어붙인 듯한 연출을 계속한다. 그리고 극이 너무 어둡다. 연극에서는 몰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명을 최소한으로 쓰는데, 이걸 영화로 끌고 오면 화면이 지나치게 어둡다. 이번 영화에도 비교적 제한된 장면(용길이네 가게와 활주로)만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연출자가 그대로 감독이 되면서 연극과 영화의 다른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다. 그 점만이 약간 아쉽다.
용길이네 상황은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은 고도성장기에 오사카 엑스포, 도쿄 올림픽으로 정신없이 번창해 간다. 하지만 용길이네 식구들은 활주로 공사 노역 일도 제대로 못하고, 취직도 안되고, 이지메를 당하며, 판자집은 강제 철거를 당할 위기이다.
그래도 용길이는 일하고, 일하고, 일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일하고, 일한다. 그리고 가족을 감싸며 이렇게 말한다.
설령, 어제가 어떤 날이든 내일은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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