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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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세계테마기행이 알려준 인연

<세계테마기행>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8:50에 EBS1에서 방송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제목 그대로 세계 곳곳을 “테마”를 갖고 찾아가는데, 그 테마라는 것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토속 맛 기행을 하거나 소수민족의 뿌리를 찾거나 시베리아의 겨울을 체험하거나 유목민을 찾아가거나… 여타의 다른 여행 정보 프로그램과는 다른 낯설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살면서 한번 가볼까 말까 한 정글이나 사막, 오지를 주로 간다. 출연진들도 연예인은 거의 없다. 소수민족 전문가가 소수민족을 찾아가고, 지리 전공 교수님이 칼데라를 설명하며, 현지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관이 바이킹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출연해 “교육방송”다운 정보를 전달한다. 그래서 어떤 편은 EBS 수능 특강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종종 대박을 칠 때도 있는데, 2020년 상반기에 방송된 <꽃중년 길을 나서다>편이 그랬고, 2014년 시청자와 함께하는 기획인 <쿠바> 편이 그랬다. 그렇게 만난 신계숙 교수님과 김세영 씨는 방송에서도 따뜻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방송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책으로 전해주고 있다.

 

 

불 앞에서 쌓아온 치열한 시간

신계숙 교수님은 중국요리를 하는 요리사이자 현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중식당 “향원”에서 중국 요리를 배우던 1980년대 말에는 화교도 아닌 여자가 중국집 주방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엌이 아닌 식당 주방, 그것도 불과 칼이 넘실대는 중국집 주방은 전형적인 남성들의 전장(戰場)이었고, 대학까지 나온 비 화교 여성이 비집고 들어갈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8년을 버텼고, 특유의 입담과 집념으로 전국의 요리 교실을 제패한 1타 강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학위를 따서 강단에 섰고, 중국 고 요리서를 번역하고, 공부하며 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있다. 2020년 초 방송된 세계테마기행에서 타이완과 중국을 다녀왔는데, 특유의 친화력과 입담을 선보여 마치 현지인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편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고, 2020년 하반기에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방송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할리데이비슨 타고, 색소폰 불면서 방송에 나오는 즐거운 인생으로 보이지만 그녀가 책에서 풀어놓은 인생은 치열한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신계숙의 일단 하는 인생>은 그녀가 10가지의 중국요리에 빗대 인생의 여러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양장피는 뜨겁게 한 다음 차갑게 하는 담금질이 필요한 까닭에 요리에 입문했던 시절의 고단함을 떠올리게 하고, 펀정파이구는 오래 공들여야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눈물 나게 맵고 코끝이 찡하도록 얼얼한 라즈지를 맛보며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바삭하면서 고소한 몐바오샤를 만들며 혼자만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동파육과 족발, 오리찜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주특기 요리이자 노력과 연구의 결실임을 말하며, 달콤한 빠스와 매콤한 생선찜 요리에서 취미 생활의 즐거움과 같은 부분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따끈한 오골계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인생의 목표에 대한 생각을 전한다.
-출판사 리뷰 중

 

충남 당진 합덕면에 살던 14살 소녀가 강제로 서울 유학을 온 시점부터 매일매일이 전투였다. 어떤 전투에서는 졌을지 몰라도, 전쟁 전체에서는 이겨 나갔다. 남들이 가지 않은 낯선 길(비혼, 여성 중국요리사, 중국 고문서 번역 등)을 택했고, 일단 가기로 했으면 거침없이 나아갔다. 남들은 오토바이에서 내려온다는 나이에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악기를 시작했다. 오래 고민하고, 과감하게 움직이고, 남들의 시선 따위에 주눅들지 않는다. 그녀가 뜨거운 불 앞에서 웍을 휘두르며 쌓아 온 치열한 시간들이 오늘의 당당한 삶의 태도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세상을 치유하는 광고를 찾아서

김세영 씨는 대홍기획, JWT, 하쿠호도 등 메이저 광고회사에서 근무한 베테랑 광고인이다. 2014년 세계테마기행의 시청자 참여 기획에 발탁되어 <쿠바> 편을 찍었다. 쿠바!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과 가까우면서도 사회주의를 고수한 덕분에 시간이 멈춰있는 곳. 광고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그곳에서 전한 이야기 덕분에 그는 이후 세계테마기행과 함께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다녀온다.

 

<나는 매디슨 애비뉴를 떠났다>는 (잘 나가는) 광고인으로 뉴욕 본사까지 다녀온 그가 뉴욕에서 얻은 깨달음때문에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이다. 그는 가장 창조적이어야 할 광고인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현실에 놀랐고, 과연 그가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광고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세상을 치유하는 광고.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고가 과연 세상을 고칠 수 있을까? 란 생각에 그는 한국을 떠나 세계의 광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종교와 욕망(히잡과 립스틱)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았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는 검열때문에 고생하면서도 오히려 제약이 창의력을 자극하여 아름다운 광고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남아공에서는 한 국가 내에서 12개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는 광고, 계급과 사는 지역에 따라 타겟이 나뉘는 광고 등을 보면서 아직도 존재하는 깊은 차별을 느꼈다. 동시에 이웃에게 수화로 대화를 거는 광고, 약의 복용 방법을 알려주는 광고 등을 보면서 광고가 세상을 구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느꼈다.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돈 때문에 생겨난다.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그 문제들의 해결 방법도 돈에 있다. 광고는 광고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조금의 창의력을 더하면 광고주가 돈을 벌면서도 세상을 선한 방식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 그는 그런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시 광고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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