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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문학 공모전을 통해 본 한국의 입시(入試) 시스템

장강명. 연세대 공대 출신으로 삼성과 동아일보를 거쳐 문학상 4관왕을 거머쥔 문단의 스타! 자타공인 문학 공모전의 수혜를 가장 받은 작가이자 입시 시스템의 승자인 그가 대한민국 입시 시스템에 의문을 던진다. 작가는 종으로는 공모전의 기원, 선발 과정, 문학상의 영향력과 문단권력을 둘러싼 오해를 파헤치고, 횡으로는 공모전뿐 아니라 단체로 시험을 봐서 적격자를 선발하는 한국 특유의 입시(入試) 시스템을 비교한다.

 

우선 공모전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 출판시장은 90년대에 들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양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에 1996년을 기점으로 출판사들이 작품성을 갖춘 작가를 발굴하겠다란 생각으로 공모전을 만들었다. 공모전 수상작을 단행본으로 출판했고, 출판사의 간판 작품으로 밀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 공모전은 이제 ‘소설가가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작가들은 공모전이라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온갖 소문이 떠돌고, 공모전 낭인마저 양산되고 있다. 작가들이 “다양하고, 좋은 작품”이 아닌 “공모전에 붙는” 작품을 쓰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있다. 도대체 이런 비효율은 왜 생기는 것일까? 자기 돈으로 얼마든지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에 작가들은 왜 아직도 문학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건 타이틀, 간판이 생기기 때문이다. ** 문학상 수상자라는 간판은 향후 작가로 대접받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출판사로부터 엄청난 푸시(후원)를 받는다. 수상작은 출판사의 주력 상품이 되어 서점 매대 최상단에 놓인다. 간판이 주는 명예, 혜택이 사회 전체의 비효율을 만들어내는 제도를 유지시키고 있다.

 

 

한국형 입시 시스템의 특징과 작가의 해법

작가는 문학 공모전에서 시작해 수능, 공무원 공채, 대기업 공채 등 한국형 입시 시스템을 비교한다. 이런 입시 시스템은 분명 장점이 있다. 1) 모두가 하나의 잣대로 평가받기 때문에 ‘공정’하다. 2) 제도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또한 3) 일단 그 시험을 통해 선발된 사람은 이 시험이 공정하고, 효율적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시험이라는 관문 하나만 통과하면 엄청난 혜택과 기득권에서 안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계급을 만들어 낸다. 세상은 시험에 붙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전자는 상위 계급이 되고, 후자는 패배자가 되거나 영원히 시험에 매달린다.

 

작가는 공개 채용이라는 입시 시스템과 투고(投稿), 로스쿨, 경력자 채용이라는 수시 채용식의 다양한 해법을 비교한다. 공개채용과 수시채용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작가는 공개 채용을 없애자는 주장은 과격한 발상이라고 본다. 대신 공채가 갖는 간판의 힘은 허물어져야 하고, 다양한 제도가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하면 간판의 힘을 허물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간판의 힘을 믿는 것은 알맹이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정보 비대칭이 심하기 때문에 간판의 힘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공개 채용이 아닌 다양한 수시 채용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1) 시장에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구직자는 좋은 회사가 어딘지 알아야 하고, 회사도 구직자의 특성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2) 시장 참여자가 다양한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 더불어 3) 실패했을 때의 대비책도 제시해야 한다.

 

 

입시는 필요하다! 그러나 보완은 필요하다!

작가는 문학상의 수혜자이고, 다양한 입시 시스템의 승자이다. 내부자의 입장에서 시스템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참신하고, 의미있는 시도이다. 그러나 그도 역시 시험을 통과한 승자 중의 하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입시 시스템을 ‘생존 문제’가 아닌 그저 ‘기득권 싸움’ 정도로 바라보는 안이한 태도를 갖고 있다.

 

공정성이 문제다!

공채 시스템이 경직되어 적합한 인재를 뽑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잣대로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문제는 ‘공정성’이다. 공채가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유지되고, 여전히 선호되는 것은 그것이 ‘서류’가 아닌 ‘시험’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서류만으로 사람을 뽑게 되면 무엇이 문제인가? 작가도 취재했다시피 신입사원 모집인데, 경력직을 뽑게 된다. 경력이 있으면 바로 현업에 투입되기 때문에 기업은 경력자를 선호하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도 경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모두가 경력자를 선호하면 20대는 어떻게 취업을 하나?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서 대기업에 도전하라고 하는데, 중소기업은 대기업 같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기업보다 더 경력자를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10대때부터 스펙 쌓기에 열중하게 되는 것이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이 부모가 기득권층이면 커리어에 유리한 스펙을 쌓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도시 노동자의 자녀는 대학 교수의 자녀에게 밀려 영원히 의사도, 법관도 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하자고 만든 로스쿨이 법조인 가족의 홈그라운드로 변한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사시 낭인도 비효율이지만 법조계가 고착화되는 것도 문제 아닐까? 똑똑하기만 하고, 인간미가 없는 의사는 문제지만 부모덕에 기본기가 없이 의사가 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재판에서 이기는 변호사는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법조인 부모 덕분에 이긴 것인지 본인의 논리력으로 이긴 것인지는 큰 차이가 있다.

 

시장이 호황이라면 그래서 책도 잘 팔리고, 원하는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다면 공채나 다른 제도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전후 미국 사회가 그랬고, 한국의 80년대가 그랬다. 그 때도 한국에는 인맥으로 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승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크게 사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도 소수였고, 충분히 능력으로 승진하고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러나 불황에는 다르다. 회사에 들어가기도 힘들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 자리를 능력이 아닌 인맥 때문에 뺏기게 된다면 생존을 위협받는다. 그래서 공채가 중요하다. 불황이든 호황이든 능력이라는 기준으로 성공의 사다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계급은 존재한다. 영원히.

작가는 간판이 주는 계급이 무너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계급은 인류의 DNA에 새겨진 본성이다. 인류는 청동기 시절부터 계급을 형성했고, 부단히 나와 남을 비교해 타인 위에 서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계급이 없는 민주사회라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하늘이 준 혈통이라 주장했던 귀족주의가 물러나고, 그 자리를 개인의 능력주의가 차지했을 뿐 여전히 세상은 계급 사회이다. 문제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아니다. 계급이 고착되고, 그 안에서 안주하며 발전을 피하고 썩어가는 구성원이 문제이다.

 

작가는 중국, 한국 등은 과거 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에 근대화에서 뒤처졌고, 일본은 과거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생겨난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나라가 한국과 베트남이다. 일본에는 과거제도가 뿌리내리지 않았다. 한자문화권 국가 중에 과거제를 도입한 중국, 한국, 베트남은 근대화에 뒤쳐져 외세에 시달리고, 그렇지 않았던 일본은 반대로 승승장구한 역사가 내 눈에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개 채용 시스템이 계급을 만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과거제를 도입하지 않았던 일본은 계급이 없는 나라인가? 일본이야말로 계급에 가장 충실한 나라이다.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는 공채 시스템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계급과 과거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상위 계급이 주도적으로 근대화에 앞섰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필요한 인재를 중용했다. 영국 역시 계급 사회지만 젠트리 계급이 변화를 주도했다. 이들은 표면적 계급과 달리 능력주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표면적인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지독한 능력주의 사회이며, 자본에 의한 계급이 존재한다. 미국은 오로지 능력만 가지고, 계급 이동이 가능하다. 어제의 노숙자가 내일의 대학 교수가 될 수 있다. 푸드 스탬프를 받던 미혼모가 스타 방송인이 될 수도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급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문제는 계급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존재하느냐이다. 혈통주의에서는 계급이 고착되어 있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한국의 공채 시스템은 오랫동안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되어왔다. 열심히 공부해서 잘살아보자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는 생존의 문제이다. 진짜 문제는 사다리를 끊어버리고, 그 안에서 다시 혈통주의로 돌아가려는 이들이다.

 

 

공채는 변해야 한다! 진입도 유지도 힘들어야 진정한 관문

공채는 유지되어야 한다. 동시에 변해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은 어쩌다 시험을 잘 봐서 통과한 사람과 긴장해서 시험을 망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 또한 직무와 적합하지 않은 시험 내용으로 엉뚱한 사람을 뽑아 놓기도 한다. 진정한 능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시험 문제를 다양화해야 한다. 기자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글을 잘 써야한다. 그런 다음에 기자라는 직업을 버틸 체력이 되는지도 측정해야 한다. 공무원 시험에서 바늘 한 쌈의 개수보다는 민원을 처리하는 능력을 측정해야 한다. 외교관이 된다면 영어만 잘하는지 아니면 논리적으로 협상을 잘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외교관에게 영어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영어만 잘하는 사람이라면 외교관이 아닌 통역이 되어야 본인과 사회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험 횟수도 늘려야 한다. 수능이 1년에 한 번이기 때문에 그 시험의 위력이 크고, 운좋은 사람을 가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체조나 멀리뛰기,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살펴보자. 순간의 퍼포먼스로 평가받기 때문에 실력보다는 평가 당일 긴장과 실수가 순위를 결정한다. 그래서 이들 종목은 시험 회차를 늘리고, 최저값과 최고값을 제거한 나머지 기록을 기준으로 삼는다. 실수나 운에 따른 효과를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도 최소한 분기마다 한 번씩 시험을 보고, 평균 또는 중간값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운이 전부가 아니라 진정한 실력을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마어마한 비용이 추가된다. 시험을 보는 비용은 한눈에 보이지만 적합한 인재를 뽑지 못해 발생하는 비용은 오랜 시간 누적되고,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어느 쪽의 비효율이 더 클까?

 

마지막으로 시험에 통과했어도 해당 직무에 대해 지속적으로 평가받고, 결국에는 쉽게 퇴출되는 구조여야 한다. 사시에 합격했어도, 회사에 들어갔어도, 공무원이 되어도 언제든지 그 지위에서 퇴출될 수 있다고 한다면 계속 노력하게 된다. 프로야구 선수를 보자. 고졸 루키가 40대까지 슈퍼스타로 남아있으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고졸 루키라도 실력이 부족하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능력주의다.

 

 

그렇게 하면 너무 사회가 빡빡하지 않겠냐고? 이미 피로사회라고? 그렇다 우리 사회는 이미 시험이 많고, 늘 경쟁하는 피로사회이다. 하지만 그 경쟁의 방향과 질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객관식 찍기에 몰두하고, 공모전에 맞춘 글쓰기에 쓰는 에너지를 보다 적합한 방향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늘 피로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사회여서는 안된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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