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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얼리 블루머(신동)에게 열광하는 사회

현대 사회는 얼리 블루머(early bloomers, 일찍 꽃 피운 사람=일찍 성공한 사람)에게 열광한다. 빌 게이츠의 성공 공식(SAT 만점을 받아서 하버드에 들어간 다음 창업)은 바이블처럼 여겨지고, 저스틴 비버와 카일리 제너 같은 어린 스타들이 추앙받는다. 따라서 SAT 점수(또는 수능 점수)가 부족해 원하는 명문대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루저(loser)가 된다. 명문대 합격은 대기업 취업으로 이어진다.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면 다시 한번 루저가 된다. 운동선수라면 명문고에 가서 좋은 프로팀에 가지 못하면 루저가 된다. 예술계에서도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지 못하면 루저가 된다. 그렇게 사회는 루저를 쌓아간다.

 

현대 사회는 왜 이렇게 이른 성공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를 신분 사회를 깨부수려는 움직임으로 설명한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우대를 받았다. 젠트리 계급은 이런 불평등을 수용할 수 없었고, 우생학을 끌어들여 “실력주의”를 주창했다. IQ, SAT 점수 등을 통해 수치로 확인되는 “실력”은 객관적 기준으로 여겨졌고, 곧 실력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었다. 실력은 부와 명성으로 이어지고, 원하는 점수를 빨리 얻게 된다면 빨리 성공하게 된다. 게다가 말콤 그래드웰이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지적한 대로 어린 나이에 기회를 가져야만 1만 시간을 쌓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주목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웃라이어(Outliers)-기회가 주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아웃라이어(Outliers)-기회가 주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아웃라이어 - 10주년 리커버 에디션 국내도서 저자 :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 노정태역 출판 : 김영사 2019.04.29 상세보기 1. 말콤 그래드웰이 제시하는 성공의 공식 성공=재능+노력+기회 Outlier

moku-culture.tistory.com

 

따라서 빨리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에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이는 족집게 과외에 불필요한 지출을 하게 만든다. IQ 점수가 실제 인지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한다는 비판에도, SAT는 그저 IQ 측정의 확장판이라는 주장에도 부모들은 족집게 과외를 동원해 더 높은 점수를 받게 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아동 우울증과 자살률을 높인다. 이른 번 아웃(burn out)을 불러오고, 비생산적인 산업에 우리 사회의 자원이 지나치게 투입되게 한다.

 

 

사람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다

그러나 사람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다. 조앤 K. 롤링이나 맥도날드 창립자 레이 크록은 이른바 레이트 블루머(late bloomers, 늦게 꽃피는 사람=늦게 성공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이런 레이트 블루머의 출현을 “뇌의 성숙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지 처리 속도나 단기 기억력은 10대~20대 사이에 정점에 이르지만 사회적 이해나 언어 지식은 50-60대에 정점에 이른다. 따라서 빠른 연산이 필요한 IT업계에서는 어린 나이의 엔지니어를 선호하지만 그 업계에서도 협상을 하거나 관리 업무는 나이가 든 사람이 주로 맡게 된다. 뇌가 성숙되는 시기는 뇌의 부위마다 다르고,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다. 따라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지만 더 성숙할 수도 있다. 특히 20대 초반은 아직도 뇌가 성숙되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인생의 진로를 완전히 결정해 버리는 것은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엄청난 손해이다. 그래서 갭 이어(gap year)를 갖고, 자신의 진로를 찾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늦게라도 꽃 피기 위해서는

레이트 블루머의 장점

저자는 레이트 블루머에게 다음의 6가지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호기심, 연민, 회복력, 평정심, 통찰력, 지혜. 그들은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하나의 길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고, 다른 이들보다 늦어진다. 또한 자신이 루저 취급을 받아봤기 때문에 연민이 강하고, 위기나 좌절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그리고 세월이 주는 평정심, 통찰력, 지혜도 갖췄다.

 

 

자신에게 맞는 환경으로 옮겨라!(가족, 지역사회, 분야 등)

레이트 블루머가 되려면 우선 자신에게 맞는 환경으로 옮겨야 한다. 저자는 이를 “화분을 옮긴다”라고 설명한다. 즉, 민들레는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지만 난초는 특정 환경에만 자랄 수 있다. 레이트 블루머는 난초 같은 사람일 수 있고, 그렇다면 난초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줘야 한다. 그 환경은 가족, 지역사회, 또래 등 다양할 수 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와 <포레스트 검프>를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돌아온 건 조소와 비난이었다. <힐빌리의 노래>에서 말하는 것처럼 패배감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한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그 길을 무작정 갈 필요는 없다. 맞지 않는 옷은 벗어야 하고, 도저히 할 수 없는 길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자기 효능감을 높여라!

레이트 블루머들은 오랜 시간 자기 회의감, 즉 내가 잘할 수 있을까란 물음과 싸워왔다. 이 물음은 사람을 절망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 능력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다른 방식으로 프레이밍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 효능감, 즉 다양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존버는 승리한다!

끝으로 저자는 “버티라”고 주장한다. 빠른 포기가 레이트 블루머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싶겠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의 길이 아니라면 빨리 포기하고, 자신의 길이라면 버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가한 소리일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길에서 꾸준히, 계속 버텨내면 언젠가 꽃 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실용서인가 논문인가

나는 <82년생 김지영>과 동갑으로 올해 40살이 되었다. 나 또한 레이트 블루머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로 책을 펴 들었고, 수많은 레이트 블루머들의 사례에 약간 고무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멋진 주제의식을 가리는 몇몇 단점이 있다.

 

우선 이 책은 끝까지 읽어나가기 쉽지 않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많은 인지 실험 결과를 나열했고, 많은 사례들을 적었다. 그럼에도 소목차가 없이 글이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진다. 지나치게 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주장을 반복하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지쳐간다.

 

또한 레이트 블루머를 옹호하려는 큰 줄기는 이해하지만 세부 주장들은 모호한 부분이 많다. 일단 “일찍 성공 또는 늦게 성공한다”는 기준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명성을 얻어야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얼리 블루머로 칭했던 이들조차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레이트 블루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에 억만장자가 된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를 얼리 블루머라 칭하고, 조앤 롤링이나 레이 크록이 레이트 블루머인 건 알겠지만 그 사이에 있는 애매한 나이의 애매한 성공들은 뭐라 칭해야 하나? 게다가 영원히 피어나지 않는 꽃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책이고, 굳이 끝까지 읽을 것을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레이트 블루머”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너는 아직 꽃 피지 않았단다. 조금 더 버텨보렴”이라고 토닥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느 순간 루저가 되어 사는 게 힘겨워진 사람이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닥달하고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 귀 기울여 볼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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