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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소설가: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쓰고 마는 사람

잡스(JOBS)의 4번째 단행본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룬다. 우리는 왜 소설이라는 걸 읽어야 할까? 어떤 사람이 소설가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걸까? 인터뷰에 응한 소설가들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인간의 고통을 덜기 위해, 사랑과 정의라는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글을 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겠죠. 소설가에겐 작품에서나마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힘 말입니다.” (요나스 요나손 인터뷰 / p.33)

 

 

“소설은 무한한 경험을 통해 당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감성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일을 맡습니다. 제 생각에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감성이고, 편견과 차별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로셀라 포스토리노 인터뷰, p.235)

 

 

“글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특권입니다. 온전히 자기만의 힘으로 그것을 선택하거나 쟁취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이 세상에는 아직 쓰이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고, 쓰여야만 하는, 써야만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분명 존재합니다.” (가와카미 미에코 인터뷰, p.298)

 

“소설가가 쓰는 글은 이 시대를 감지하고 그 시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바로 소설가의 윤리 의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로 독자에게 다가갈지는 모르지만, 소설가라면 언제나 지금 시대의 일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때론 조선시대를,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시대에 관해 쓰더라도 그 안에는 현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김연수 인터뷰, p.348)

 

 

그러면서 동시에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한 조언을 준다. 장강명 작가는 소설가의 원천은 결국 좋은 원고에 있다고 말하며, 정세랑 작가는 포지셔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작가들이 몸을 혹사시키지 말 것을 당부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쓸 수 있도록.

 

 

작가로 먹고 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33가지 조언

쓰고 싶고,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어 작가가 되었지만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이상과 글만 써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이 공존한다. 배가 고파야 예술가이고, 코너에 몰리지 않으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글을 쓰는 동안 찾아오는 배고픔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층위는 다른 월급쟁이의 층위보다 넓고 깊다. 글을 써서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책이 팔리지 않는 거의 대부분의 작가는 가난에 쪼들린다. 따라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그것이 부업이든 전업이든)은 필수다. 이 책에 등장하는 33명의 작가 중 대부분이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을 갖고 있었고, 현재도 글쓰기와 다른 직업을 병행하고 있다. 많은 수가 대학이나 다른 곳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고, 블로거나 카피라이터 같이 인접 영역의 직업에 종사한다. 대필작가나 목수처럼 특수한 전문직인 경우도 있지만 최저시급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돈이 없어서 공항 바닥에 앉아 울었고,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푸드 스탬프를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가가 되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이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 마이너로 여겨지는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이 마주한 현실은 더욱 냉담하다. 이들은 백인 남성 작가에 비해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더 많은 갈림길에서 고민해야 하며, 자존심과 정체성을 버려야 한다.

 

글이 팔리기 시작하면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된다. 글 쓰는 건 예술이지만 출판은 비즈니스다. 재능이 있는 것과 책이 잘 팔리는 것은 별개이며, 오히려 ‘잘 팔리는 책을 쓰는 재능’이 역사에 남을 대작을 쓰는 재능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어떤 에이전트와 어떤 편집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책은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이전 시대에 비해 종이 책을 출간한다는 것의 위력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기존 매체의 추천은 필요하다. 그래서 작가는 더 이상 글만 써서는 안되고, 글-출판-그 이후를 생각하는 개인 비즈니스를 운영해야 한다.

 

 

특별한 케이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사진 출처: YES24

 

여기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있다. 화창한 봄날, 야구를 보다가 느닷없이 ‘소설을 써야겠다’는 계시를 받았다. 글은 술술 나왔다. 글감이 없어서, 글이 진행되지 않아서 고생해 본 적은 없다. 글이 안 써질 것 같으면 아예 쓰지 않는다. 첫 소설부터 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단했고, 히트작이 연이어 나왔다. 원고 의뢰가 많지만 소설에 집중하기 위해 돈 되는 일들을 거절한다. 그래도 생계엔 지장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이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소설가가 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소설가와 관련된 몇가지 생각을 풀어놓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소설을 쓰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딱히 치밀하게 노리고 쓴 것도 아닌데 팬덤이 형성됐고, 책이 팔렸다. 하지만 위의 두 책을 읽어보면 현실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스타 작가에 한정된 매우 특별한 이야기이다. 거의 대부분의 작가는 글이 마음대로 안 써지는 날이 더 많고, 원고 의뢰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생계 문제 때문에 고민한다. 원고 의뢰를 저렇게 당당하게 거절할만한 위치에 오른 작가도 없고, 문단을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건 더욱더 어렵다.

 

일반론에서 한참 벗어난 하루키이지만 일반인도 써먹을 만한 몇 가지 팁을 전수한다. 글을 쓰기 위해 운동을 하고 몸을 만든다. 재능을 짧게 불꽃처럼 태우는 작가도 있지만 자신은 오래도록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운동을 한다. 글을 쓰기 위해 다른 잡다한 것들은 삶에서 지워 나간다. 무엇보다 많이 읽고, 많이 상상해야 한다.

 

결국 작가라는 직업은 쓰고 싶은 것이 있어서,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작가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동안은 자신을 혹사시켜서는 안 된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쓸 수 있도록. 그것이 작가들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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