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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의 한 종류였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째서 스스로를 슬기로운 인간(사피엔스)이라 부르며 지구 상 유일한 인간이 되었을까? 지구의 시간, 아니 인류의 출현으로만 따져봐도 사피엔스는 짧은 시간 내에 세력을 키우고, 제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의 멸망까지 초래하려 한다.

 

 

사진 출처: YES24

 

 

 

인지혁명(약 7만여 년 전)

Q. 사피엔스는 어떻게 지구 상 유일한 인간 종이 되었나?

오랜 옛날, 지구에는 여러 종의 인간이 동시에 존재했고, 그 중 하나였던 사피엔스는 다른 종에 비해 기후를 견디는 힘이나 물리적 힘이 약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지구 상에는 호모 사피엔스만 남아있다. 사피엔스는 어째서 유일한 인간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저자(유발 하라리)는 이것을 인지혁명에 의한 사피엔스의 진화와 그에 이어진 대학살로 설명한다. 사피엔스가 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언어”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사피엔스는 언어를 사용했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허구”를 지어내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허구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과 장소의 정보이며, 다른 이에 대한 뒷담화도 포함된다. 이런 정보들을 교환하면서 사피엔스는 “유연하게 협력”을 할 수 있었다. 1:1로 싸우면 사피엔스는 매머드나 네안데르탈인에게 이길 수 없지만 수백, 수천명의 사피엔스는 협동해서 개인의 물리적 한계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사피엔스는 지구 상의 경쟁자들을 말살시켰다. 다른 종의 인간과 대형동물들이 자연 소멸이나 기후 변화가 아닌 대학살 때문에 사라졌다는 증거는 여럿 있다. 사피엔스는 그렇게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

 

 

농업혁명(약 12,000년 전)

Q. 사피엔스는 어떻게 세력을 확장했나?

특정 종이 생물로서 성공을 했는가 여부는 해당 종의 “DNA를 가진 개체 수”가 얼마나 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게 본다면 가축이나 밀, 쌀 같은 작물은 스스로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서 인간을 “길들였다”. 인간인 사피엔스조차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성공한 종이 되었다. 그러나 종의 성공이 개체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1) 수렵, 채취한 음식이 아닌 스스로 경작한 작물만 먹으며 굶주림에 시달렸고, 2) 끊임없는 노동의 굴레에 갇혔으며, 3)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잠을 못 이루게 되었다. 살 수 있는 공간은 경작지 주변으로 좁아졌으나 걱정해야 할 시간의 길이는 길어졌다.

 

잉여 생산물은 계급을 만들었다. 사피엔스는 계급을 정당화하기 위해, 즉 우연히 얻은 힘이 아니라 하늘이 준 바꿀 수 없는 힘이라 주장하기 위해 상상 속 질서(신화)를 만들었다. 상상 속 질서는 1) 물질 세계 기반하고, 2) 욕망의 형태를 결정하며, 3) 상호 주관적이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135쪽

 

잉여 생산물이 늘어나고, 계급 때문에 다양한 사회질서가 증가하면서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아지자 사피엔스는 숫자와 문자를 만들었다. 그렇게 증가한 “허구의 시스템”은 또 다시 사피엔스를 협력할 수 있게 묶었다. 또한 계급은 차별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다양한 차별(성별, 인종, 종교 등)은 생물학적 차이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인류의 통합

Q. 사피엔스는 어떻게 통합했나?

특정 종이 한 번에 무리 지어 활동할 수 있는 개체 수는 대략 정해져 있다. 그러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사피엔스는 세력을 계속 확장했고, 더 큰 무리를 형성했다. 무엇이 사피엔스를 통합시켰나?

 

저자는 돈, 제국, 종교라는 세가지 허구의 시스템이 사피엔스를 하나로 통합했다고 설명한다.

돈은 잉여생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생활이 다양해지면서 보편적으로 전환되고, 보편적으로 신뢰를 얻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오늘날 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가장 강력한 시스템이다.

제국은 문화적 정체성(문화유산)과 탄력적 국경을 가진다. 제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제국으로 바뀔 뿐이다. 사람들은 제국의 그늘에서 제국의 유산을 누리면서 동질감을 갖게 된다.

종교는 초인적 질서와 구속력을 가진다. 종교는 기존의 질서와 배치되는 면도 있지만 유연한 설명으로 빠져나갔다. 가령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이지만 악마의 존재를 등장시켜 이신론의 형태를 취했고, 성자(聖者)를 등장시켜 다신교의 시스템도 취했다.

 

 

과학혁명(약 500년 전)

아는 것이 힘이다!

유럽이 산업혁명을 거쳐, 제국주의를 부르짖으며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혁명의 수혜를 먼저 누렸기 때문이다. 과학은 “나는 알지 못한다”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큰 땅덩어리에 만족하고 있던 중국이나 주변 지역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조차 몰랐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이 과학과 수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했고, 생각과 살아가는 땅의 크기를 키웠다.

 

과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그것이 힘이 되기 때문에 돈과 권력이 과학을 후원했고,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전은 그 궤를 같이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돈을 갖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소비는 생산을 촉진하고, 이는 다시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웠다. 그렇게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피엔스는 많은 것들을 정복해갔다. 미지의 땅을 얻었고, 더 큰 힘을 가진 무기를 만들었으며, 절대적인 빈곤과 수많은 질병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과학은 기존에 사피엔스를 구성하고 있던 체제와 행복까지도 대체하려 든다.

 

사피엔스는 과학의 힘으로 무엇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사피엔스는 적어도 DNA의 한계 안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인류는 이 한계마저 뛰어넘으려 한다. 길가메시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영생을 추구하면서 몸을 기계로 바꾸고, 유전자를 조작하려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등장할 인류는 사피엔스 종이라 할 수 있을까? 이들은 더 큰 육체를 갖기 위해 네안데르탈인을 부활시킬 가능성은 없을까? 결국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멸망까지도 결정하게 되는 것일까?

 

 

죄수의 딜레마

저자는 종의 성공 여부는 개체의 숫자로 정해질 뿐 각 개체의 삶의 질을 향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수렵 채취 시절보다 불행해졌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과학이 발달하면서 절대적 빈곤과 질병이라는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났지만 그 덕분에 사피엔스는 폭발적으로 숫자가 증가했고, 그것이 사피엔스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주장한대로 농업혁명 때문에 인류가 비참해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적어도 농사를 지으면 겨울엔 먹을 것이 생기고,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다. 한 개인은 자신이 겨울동안 먹을 양식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시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종의 성공을 원하는 DNA의 농간이 아니었다. 이는 마치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것이다. 한 개인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지만 전체로서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제국의 존재와 그 문화유산을 흡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제국의 문화를 흡수하고 동화되는 것이 당장의 삶의 질을 올려준다. 그것이 민족 정체성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게 되고,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사피엔스는 허구의 시스템을 만들어 유일한 인간이 되었고, 세력을 확장했으며,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다. 허구의 시스템은 사피엔스가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주었지만 그 협력은 결국 개인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에만 유효하다. 개인은 사피엔스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당장에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선택해 나갈 뿐이다. 그런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 세상은 변화한다. 그것은 진보일 수도 있고, 퇴보일 수도 있다. 그 선택의 결과 지금 당장 불행해질 수도 있고,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며,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미래에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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