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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RANGE: Why Generalists Triumph in a Specialized World>

한국어판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제목만 보면 <레이트 블루머>에 대해서만 다룬 것 같다.

 

레이트 블루머(Late Bloomers)-사람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다

 

레이트 블루머(Late Bloomers)-사람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다

얼리 블루머(신동)에게 열광하는 사회 현대 사회는 얼리 블루머(early bloomers, 일찍 꽃 피운 사람=일찍 성공한 사람)에게 열광한다. 빌 게이츠의 성공 공식(SAT 만점을 받아서 하버드에 들어간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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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기교육이 능사가 아니다, 늦게 시작해도 성공한다”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지만 이 책은 조기 교육의 폐해나 늦은 성공만을 다루지 않는다. 원래 제목은 <Range>로 한국어로 하면 ‘범위, 폭,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렇다. 이 책은 “개인의 경험, 생각, 능력의 폭을 넓히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어 제목은 저렇게 했을까? 추측해보건데 1) 원제인 range를 딱 떨어지는 한국어로 바꾸기 어려웠고, 2) ‘늦깎이 천재’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느낀 게 아닐까? 그렇다고는 해도 저 제목은 오역이라고 본다.

 

 

Specialist vs. Generalist

스페셜리스트가 대접받는 세상이다. 일찌감치 한 우물을 파서 빠르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넘쳐난다. 타이거 우즈, 빌 게이츠가 그랬고,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음악 신동들이 그러하다. 그런 조류를 타고 우리나라에도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이든 음악이든 수학이든 과학이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도 가고, 직업도 얻는다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결과 무려 16-17살에 자신이 문과인지 이과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한번 그 길로 들어서면 다른 쪽은 불가촉천민처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긴 당장에 앞에 놓인 문제들을 외우느라 쳐다볼 시간도 없었다. 요즘에는 학생부 종합전형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고 한다. 그냥 과학자가 아니고, 유전자 분리 기술을 이용해 췌장암을 고치는 생물학자 같은 식으로. OMG!

 

솔직히 물어보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16-17살에 자신의 진로를 ‘완벽하게’ 정할 수 있을까? 요즘 초등학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유튜버인데, 15년 전만 해도 유튜버라는 직업도, 유튜브라는 플랫폼도 생소했다. 그러니 지금 유튜버로 떼돈을 벌고 있는 ‘어른’들은 장래희망에 '유튜버'라고 적어본 적이 없다. 지금의 초등학생이 10-15년 후에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유튜버가 최고의 직업일 수 있을까?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어떻게 어린 시절에 전문화된 훈련을 반복해서 받고, 그 길로만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천재들의 성공 이야기는 달콤하다. 아이가 조금만 재능을 보이면 그 길로 모든 자원을 투자해 아이를 성공하게 만들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이 책의 저자인 앱스타인은 생애 초기에 전문화된 교육을 받아서, 수많은 연습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고 주장한다. 골프, 악기 연주, 체스 같은 분야는 확실히 어린 천재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주가 예측, 국제 정세 분석 등은 조기 교육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즉, 정형화된 패턴이 존재하는 제한된 환경에서는 ‘1만 시간 법칙’이 유효하다. 그러나 불확실하고, 패턴을 추출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반복된 학습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유추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고, 많은 것들을 정형화된 패턴으로 추출할 수 있었던 전근대, 근대 사회에서는 스페셜리스트가 유리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지식을 전방위로 활용해 유추해야 하고, 그래서 융통성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본 제너럴리스트가 유리해진다.

 

그릿의 문제가 아니야!

앱스타인도 그랬고, 반 고흐도 그랬으며,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나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출신 장교들도 그렇지만 인생 초기에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이탈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며 “실패했다”라고 말했고, 끈기가 없다고,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건 그릿(Grit, 끈기, 집중력, 열정 등)이 적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서 생긴 현상이라고 본다. 웨스트포인트의 엘리트 장교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영원히 직업 군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훈련을 받다 보니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릿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직무적성'이 맞지 않아서 군대를 떠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군대에서 훈련을 받았던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과거 실패자'들은 웨스트포인트에서 훈련을 받으며 배웠던 것들이 자신의 성공에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사람은 변한다. 세상은 더 빨리 변한다. 16-17살 때에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되어 노벨상을 받겠다고 꿈꿨을지 몰라도 막상 대학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다 보니 가르치는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생님이 되었다가도 나중에 창업해서 경영자가 될 수도 있다. 하물며 자신의 적성에 대해 고민도 해본 적 없이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다면 어떨까? 도전과 그에 따르는 실패는 시간낭비가 아니다. 다양한 경험 쌓기를 통한 적성 찾기의 과정이며,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자

전방위로 능력을 활용하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다양한 경험을 하는 편이 좋다. 페더러는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워봤기에 테니스에서 화려한 기술과 빠른 반응속도를 보일 수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만화,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섭렵했기에 횡으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움직임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는 애니메이션만 파고든 것이 아니라 사회, 건축, 역사, 식물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외부인의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챌린저 호 폭발사건에서 보듯이 NASA의 구성원들은 숫자에 집착했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었다. 대형 산불이 났을 때 소방대원들은 무거운 구조 도구를 메고 뛰다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도구를 버렸으면 빨리 뛰어서 불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도구를 버려도 된다”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저자는 전문화될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이 경직된다고 보았다.

 

길을 잃어보자. 물론 힘들고, 짜증날 수 있다. 지름길을 속속 골라서 가는 친구들을 보면 화가 날 것이다. 그 지름길이 부모가 돈으로 깔아준 길이라면 더욱더 분노할 것이다. 그래도 지금 길을 잃어보고,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고,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보는 그 경험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앞으로 찾아올 길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다. 지름길도 지도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을 잃어 본 사람은 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나아갈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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