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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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가 잃어버린 것

인류는 BnL사가 제공한 엑시엄(Axiom) 호를 타고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고 있다. BnL사는 눈부신 미래를 약속했다.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불편한 것은 내버리면 된다. 그렇게 엑시엄 호를 타고 700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운동부족과 무중력의 영향 때문에 살이 쪄서, 걸을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자동항법장치인 오토(Auto)가 설정한대로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색을 바꾸며, 주어진 내용만을 받아들였다. 바로 옆에 아름다운 별들과 수영장과 따뜻한 인간이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모니터 속의 세상에 갇혀있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며, 결국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하게 됐다. 의자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보는 엑시엄 호의 승객들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안마의자에 앉아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우리와 뭐가 다른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람들은 오토가 내보내는 영상이 꺼졌을 때,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지, 무엇을 잃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숨만 붙어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외치는 선장의 절규는 현실을 자각한 인류의 모습이며, 살찐 몸으로 겨우 일어나 스스로 걷기 시작한 선장의 모습은 암스트롱이 달에 내디딘 한걸음만큼 위대한 한걸음이었다.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의 선조가 나타난 것은 기원전 400만년 전쯤이라고 한다. 그렇게 두발로 걷게 된 인류는 겨우 1만년 전쯤에 문명사회로 나아갔다. 두발로 걷기 시작해 문명을 만들기까지 399만년이나 걸린 것이다. 그런데 엑시엄 호를 탄 인류는 겨우 700년 만에 스스로 걷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일하지 않고 모든 것을 누리는 안락한 삶은 양계장 안의 암탉과 다르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기 결정권과 인간으로서의 자존까지 잃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디스토피아를 묘사했다. <멋진 신세계>, <1984>, <블레이드 러너> 등이 그려낸 미래에서는 인류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른 존재에게 의지한 채 무력하게 살아간다. 비록 밝고,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지만 엑시엄 호에 사는 인류의 모습도 디스토피아 그 자체이다.

 

엑시엄 호에 탄 그들, 아니 우리는 사고의 귀찮음을 내던지고, 육체의 편암함을 얻은 대가로 인간으로서 자존과 자유를 잃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모르는 생명체로 전락했다. 그것은 행복도, 생존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지켜낸 것

Wall-E(이하 월 E)는 BnL 사에서 만든 쓰레기 처리 로봇이다. 인류가 떠난 지구에서, 다른 로봇과 기계들도 모두 멈춰버린 폐허 속에서 월 E는 혼자 묵묵히 일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추억을 소중히 하는 월 E는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겁이 많은 월 E지만 자신이 부서지고 사라질 수 있음에도 이브를 구하기 위해 알지 못하는 세계로 뛰어들었다. 월 E는 지구의 추억을 소중히 지켰고, 친구인 할을 소중히 다뤘고, 사랑하는 존재를 지켰다. 위험에 처한 이들, 고장 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쓰레기 처리 로봇에 불과한 월E가 엑시엄 호에서 무력하게 떠다니는 사람들보다 더욱 인간답지 않은가? 월 E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그가 지켜낸 것은 단순히 조그만 풀 한포기, 로봇 하나가 아니다. 그는 자존과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켰고, 인류가 다시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달콤한 과자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기술은 인간의 불편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고, 다 할 수 있다. 확실히 몸은 편해졌다. 그렇다고 우리는 더 똑똑해졌을까? 오피니언 리더가, 구글의 알고리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기술을 거부하고 시대에 역행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술은 헨젤과 그레텔을 홀리던 과자부스러기 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콤한 그 길을 의심하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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