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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스시 장인, 지로

오노 지로(小野 二郎)는 스시 장인(鮨職人)이다. 도쿄 긴자에 있는 빌딩 지하에서 스키야바시 지로(すきやばし次郎)라는 작은 스시야(카운터 10석 정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 규모는 작지만 명성은 드높다. 스키야바시 지로는 미슐랭 가이드 도쿄판에서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별 3개를 받았다. 단 한번, 단 한 개의 별만 받아도 영광이라는 콧대높은 미슐랭 가이드에서 10년이 넘도록 별 3개를 유지했다. 2020년 판에서는 별을 아예 받지 못했는데, 이는 품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일반 고객이 거의 예약을 할 수 없어서라고 한다. 이 가게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함께 식사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스키야바시 지로는 정해진 메뉴가 없으며, 당일 가장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오마카세(お任せ)로만 스시를 대접한다. 가격은 1인당 3만엔(약 30만원)이상이다. 상당한 고가임에도 이 가게는 예약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인기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누군가는 미슐랭이 그렇게 대단하냐고, 스시가 너무 비싼 게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미식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들은 이 곳에 대해 별점 테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스시 장인이라는 타이틀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장인(職人)은 단순히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장인은 일정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구하고, 수행(修行)해 궁극의 경지로 나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오노 지로는 아직도 모든 식재료를 직접 검수하고,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스시를 연구한다. 손을 보호하려고 한여름에도 흰 면장갑을 끼고 다니며,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 촬영 당시 이미 85살이 넘었음에도 스시에 대한 열정으로 눈이 반짝였다. 노익장이나 그 나이에 정정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열정과 움직임이었다. 그는 최고의 스시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위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무게

영화는 작은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과와 음식 평론가의 의견을 통해 스시 장인 지로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지만 동시에 지로의 두 아들이 지닌 무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장남인 요시카즈는 긴자에 있는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데, 언젠가 그 가게를 물려받을 것이다. 차남인 다카시는 롯본기에서 스키야바시 지로 2호점을 운영한다. 장남은 매일 아침 츠키지에 가서 재료를 가져오고, 직접 김을 굽거나 밑간을 하면서 가게 실무를 도맡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에게 최종 검수를 받는다. 나이도, 경력도 쌓인 요시카즈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날 일은 적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엄하다. 그들을 잘 아는 음식평론가나 예전에 지로 밑에서 일했던 제자는 위대한 아버지를 가진 요시카즈가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츠키지에 대녀오는 요시카즈(왼쪽), 지로와 요시카즈(오른쪽),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요시카즈도 충분히 실력있는 요리사다. 독립했다면 이미 자기 가게를 차려서 이름을 날렸을 수도 있다. 미슐랭 평가원이 처음 왔을 때에도 지로가 아닌 요시카즈가 스시를 쥐었다. 그러나 요시카즈는 앞으로도 영원히 아버지와 비교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요시카즈가 지로의 경지에 이른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지로의 2-3 배가 넘는 경지에 도달해야 겨우 ‘지로를 뛰어 넘었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나무가 크면 그림자가 길다. 그래서 큰 나무 밑에서는 작은 나무가 자랄 수 없다. <친애하는 아버님께(拝啓、父上様)>라는 드라마는 가쿠라자카에 있는 요리집 사카시타(坂下)를 무대로 한다. 이 가게는 유력 정치인(쿠마자와)의 정부가 운영하는데, 그의 숨겨진 딸이 실질적인 주인이고, 사위인 다모츠는 주방에서 2인자로 일하고 있다. 이 가게의 요리장은 유명한 요리사 류지다. 1화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쿠마자와는 류지를 불러서 마지막 부탁을 한다. 이제 사카시타를 떠나 달라고, 그게 자기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류지나 지로 모두 큰 나무다. 큰 나무 옆에서는 다모츠나 요시카즈 모두 성장할 수 없다. 옆에 있으면서 기술은 배워서 늘겠지만 요리사로 명성을 얻어 자립하기는 힘들다. 위대한 아버지를 뛰어 넘는 건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어려운 것이다.

 

이병철과 이건희, 그리고 이재용

삼성 그룹의 3대도 그러하다. 개인적인 평가는 차치하고, 이병철은 한국 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주축이 되는 삼성과 CJ, 신세계, 한솔 그룹이 모두 이병철의 성과다. 삼성을 물려받은 3남 이건희의 어깨는 무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는 이병철을 뛰어넘었다. 이건희는 이제 이병철 아들이 아닌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올려놓은 인물로 기억된다.

 

이제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이 삼성전자를 이어받았다. 할아버지를 뛰어넘은 아버지의 업적은 너무 크고, 그만큼 무겁다. 선대의 업적뿐 아니라 오명 또한 이재용이 나아갈 길에 놓여있다. 이재용이 이건희를 뛰어넘는 큰 나무가 될지 아니면 선대의 그늘에 안주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가 걸어갈 길이 매우 어려울 것임을, 평범한 부모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잔혹할 것임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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