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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표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국내도서
저자 : 이어령
출판 : 문학사상 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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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縮み」志向の日本人 (講談社學術文庫)
외국도서
저자 : 李 御寧
출판 : 講談社(강담사) 20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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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Unmasked (새먼나라이웃나라-우리나라편 영문판)
국내도서
저자 : 이원복(Won-bok RHIE) / 루이스 최역
출판 : 김영사 200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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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이 1982년 일본 고단샤를 통해 일본어로 먼저 출간한 후, 본인이 한국어로 번역(이라 부르고 한국어로 다시 씀)한 책이다. 이어령 선생님(이하 작가)은 일본의 경제 발전 양상을 보고 '패전국인 일본이 어떻게 다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란 질문에서 시작해 '일본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일본과 너무 다른 서양이 아닌, 닮았으면서도 다른 한국의 눈으로 봐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일본이 고도 성장의 절정기에 있을 때 출간되었다. 즉,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오랜 기간 불황의 늪에 빠져 의욕을 잃은 일본이 아니라 전세계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팔면서 소니가 종교처럼 여겨지던 시대의 일본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과는 맞지 않는 사례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칠 정도로 날카로운 지적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1. 일본을 제대로 보려면 한국인의 눈으로 봐야한다.

 

흔해빠진 일본론을 다시 시작하는 이유로 작가는 그것이 '서양인의 눈으로 본' 일본이며, 일본인 또한 그런 일본론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동양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동북아시아인과 판이하게 다른 서양인의 눈에는 일부의 특성을 일반화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두가 갖고 있는 특성을 일부의 고유한 특성인 것 마냥 추켜세우기도 한다. 일본인이 자신을 구미 세계의 일원으로 여기고, 탈아입구를 주장하게 된 것에는 이런 일본인론의 영향도 있다고 본다.

 

나와 너무 다른 이의 눈에는 나의 모습은 그저 그 자체로 신기한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이가 보았을 때 나만의 특성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한국인이 뜯어봐야만 그들의 고유한 특성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2. 축소지향의 일본인

 

원제는 「縮み志向の日本人」으로 일본어 "縮む"는 한국어 "축소"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한국어로 축소가 "모양이나 규모를 작게 함"이라 하여 공간적인 의미만 갖는데 반해 일본어로 "縮む"는 쑤셔넣고, 줄이고, 밀어넣는 즉, 줄여나가는 그 행동 그 자체도 포함해 시공간의 의미를 다 갖는다고 본다. 작가도 이 차이를 알고 있으나 한국어로 적당한 표현이 없어 "축소"를 선택했다고 한다.

 

작가는 일본인이 "축소"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다. 일본인의 축소 지향의 특성은 6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込める、折り畳む、削る、詰める、構える、凝らせる의 6가지 형태는 조사 の를 이용한 시공간의 응축, 쥘부채형, 이네마사 인형에서 보이는 생각과 강조, 벤토(도시락보다는 좀 더 정확한 느낌을 전달한다)에서 나타나는 주방의 소형화, 우키요에나 검도에서 보이는 정신의 압축, 가문의 문장이나 노래에서 나타나는 상징주의로 나타난다. 이를 기본으로 자연, 사회에서 나타나는 축소 지향의 다양한 예를 들고 있다.

 

일본식 정원은 자연 그 자체를 집 안에 끌어오는 차경(借景)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자연 그 자체를 둘러보고, 그것에 변형을 가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정원은 자연을 집 안에 재현하기 위해 애쓴다. 강물을 흉내 내어 물길을 만들고, 산수를 석정으로 표현하고, 분재를 만든다. 인위적이다. 이네마사 인형과 코케시 인형은 생략하고, 일부 부분을 강조했다. 벤토는 밥상 그 자체를 좁은 공간에 밀어넣은 것이다. 자의적으로 선택해서 밀어넣고, 몰아넣고, 쑤셔넣었다.

 

작가가 여러 예를 들고 있지만 나는 이 예에 "비즈니스 호텔"을 추가하고 싶다. 비즈니스 호텔의 방이 공간의 축소에 가장 극단적인 예라고 본다. 호텔 방이라는 것은 원래 인간의 생활 영역을 일정 공간 안에 모두 담아내야 한다. 개인 주택과 달리 룸 하나에 private space를 만들어야 하다보니 먹고, 씻고, 자는 모든 행위를 다 할 수 있도록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초원이나 평원 한복판이 아닌 한 도심의 호텔에는 공간의 제약이 존재한다. 그래서 호텔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온갖 궁리를 한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은 1인실이 11평방미터 정도이니 침대와 욕실이 들어가면 끝이다. 고시원보다 약간 큰 그 공간에 욕실과 수납공간, 책상, 티비까지 다 밀어넣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수납공간이 나오고, 냉장고는 어쩜 그런 자투리 공간에 들어가있나 싶다. 아마 이런 비즈니스 호텔은 중국이나 미국은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작가가 든 수많은 사례들과 축소의 6가지 형태를 보면 일본인이 축소를 지향한다는 지적을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우리와 달리 축소를 지향하게 되었을까?

 

3. 일본인은 왜 축소를 지향하나 - 섬에서 살기 위한 생존전략

 

작가는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의 "무엇이든 무엇이든 작은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라는 부분을 인용해 "일본인은 원래 그렇다"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찾아도 그게 끝이다. 원래 그랬단다. 그래서 큰 우주도 작은 물방울 하나에 집약하고, 시간도 풍경도 인생도 작은 사물에 쑤셔 넣는단다라고 말한다.

 

그게 다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 중국의 근처라는 지정학적 요인의 결과라고 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원복 교수(이하 저자)의 "Korea unmasked"를 인용해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인과 중국인이 나와 타인의 경계가 분명한 데 반해 한국인은 피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대륙과 해양 세력 모두와 섞이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넓은 대륙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기에 자력구제의 방침으로 오직 나 스스로가 또는 되도록 작은 단위인 가족 정도만을 중요시 여겨왔다. 반면 일본에서는 좁은 땅(일본도 내륙 지방의 상당부분이 산맥이 많아 거주지역은 해안가 위주이다)에서 많은 자연재해를 겪으며 살아야한다. 또한 섬이기에 도망칠 곳도 없다. 이 곳에서는 서로 싸우면 모두가 같이 죽는다. 그래서 싸움을 피하게 된다. 그것이 일본에서는 화(和)가 되고, 영국에서는 의회 민주주의로 발전한 것이다. 반면 한국과 이탈리아 같은 반도 국가들은 사람이 섞이고, 문물이 섞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와도 쉽게 밥을 먹고, 친구가 된다.

 

여기에서 추론해보면 일본인은 축소 지향은 싸움을 피하는 화(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부대끼면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난다. 싸우지 않으려면 마찰을 줄여야하고, 타인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사람들은 좁은 공간으로 갈수록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공유로 인해 마찰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작게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안전하다. 내가 품을 수 있어야만 내 것이 되고, 내 세상이 된다. 이는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고, 그러기에 분재를 만들고, 정원을 만들고, 영화관에 가는 대신 DVD를 소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좁은 공간 속에서 나만 볼 수 있어야 안전하다. 그래야 싸울 일도 없고, 오롯이 나만이 누릴 수 있다.

 

오랜 기간 약소국이었고, 섬이라는 불리한 지형에서 항상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죽음을 가까이 한 일본의 특성이 그들을 좁은 구석으로 내몰았고,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축소를 지향하게 되었다고 본다.

 

4. 일본이 확대 지향을 하면...

그렇다고 모든 일본인이 축소만 지향한 것은 아니다. 분명 일본에도 말도 안되는 큰 물건들이 있다. 한국의 사찰과는 달리 일본의 절에는 대불이 많고, 지온인이나 산젠인, 도후쿠지의 산몬은 한국 절의 일주문과 비교도 안되게 크다. 심지어 일본인은 10인분은 될 법한 메가 메뉴를 만들어서 바보같이 먹어치우는 대회를 한다. 분명 축소를 지향하지만 확대를 지향하는 성향도 존재한다.

 

작가는 일본이 확대를 지향할 때마다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2차세계대전이 그랬다. 나는 여기에 예를 하나 더 들어 플라자 합의나 미국의 수출 축소 압력을 추가하고 싶다. 이렇게 확대지향을 할 때마다 일본인은 외부에 얻어맞았고, 때문에 일본인은 1등이 아니라 2등에 만족하고. 더욱 축소지향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확대 지향을 한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점은 수긍한다. 하지만 그들이 확대 지향으로 나아간 데에는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시선 돌리기용이었다. 임진왜란은 전국시대 다이묘들을 달래기 위함이었고, 2차 세계대전도 그랬다.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다른 국가들도 흔히 사용한다. Welt politics를 주장한 빌헬름 1세의 독일도 그러했고, 나폴레옹도 그랬다. 공동의 적을 만들어야 내부가 단합된다. 심지어 지금 트럼프도 그 방법을 쓰고 있지 않나?

 

문득, 밖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 없다면 내부의 불만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란 생각이 든다. 역시 애초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끔 거리를 두고, 고립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5. 2020년의 일본론

지금의 일본은 오랜 저성장을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고립이 심화되었다.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어 세계 표준과 뒤떨어졌고, 내수 시장에 만족하고 있다. 소니와 마츠시타 전기(파나소닉)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축소지향의 대표작인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세상을 호령한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전자 제품은 애플의 아이폰이다. 축소보다는 고립이다.

 

작가가 2020년의 일본론을 쓴다면 어떤 글이 될까 궁금하다.

 

같이 읽을 글-이어령이 본 한국인, 한국 문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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