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칼럼을 엮은 글이고, 잡스 에디터는 매거진 <B>가 처음으로 내놓은 단행본으로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들의 인터뷰를 엮은 것이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책을 묶은 것은 두 책 모두 "편집이 창조로 이어진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야 창조"라고 생각한다. 듣도보도 못한 것만을 만들어야 창조라고.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건 조물주가 아닌 인간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상상의 동물이라는 용과 유니콘도 모두 어디서 본 듯한 동물들의 조합이다. 0에서 1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1이 10이 되는 건 비교적 쉽다. 하지만 1이 10이 되었다고 그것은 창조가 아닐까? 우리가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 유튜버들은 진짜 "창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창조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편집이 창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창조는 편집이다"라고 주장한다. 편집 가능성이 있어야 좋은 지식이며, 관점과 심리를 편집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이란 기계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마트폰 생태계를 조성했다. 카라얀은 뮤직비디오를 이용해 클래식을 대중에게 전파했다. 영화와 예능은 편집 기술 때문에 녹화된 영상에서 진일보한 예술이 되는 것이다. 김용옥의 크로스텍스트와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는 짜깁기 지식이 아닌 진보하는 지식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원근법으로 대표되는 공간 편집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학교도 상점도 편집하기에 따라 인간을 살릴 수도 압박할 수도 있다. 개인의 심리도 편집된 결과이다. 아동이란 개념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연약해서 보호받아야 하고, 일정 시기가 되면 교육받아야 하며, 따뜻한 사랑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는 어린 인간"은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보편적 개념이 아니었다. 아동의 노동이 금지되고, 교육이 장려된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 국가,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애국심 등은 모두 편집된 개념이다. 누가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떻게 개념을 편집해 나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편집이 창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식의 분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트와 카드의 예를 들면서 편집 가능성이 없는 노트식 정리가 창조를 가로막는다고 본다. 지식이 자유로운 형태로 저장되고, 그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형식으로 가져다 쓸 수 있어야 창조의 토양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세상에서 마우스를 잡아 올린 지식이 창조의 폭발을 이끌었다.
창조는 기존에 세상에 없던 것을 갑자기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0에서 1이 되는 것이 아닌 1이 1+a가 되고, 2가 되고, 10이 되는 것이 창조이다. 어떤 가치를 어떻게 부여하느냐, 우리의 관점을, 생활을, 개념을, 인식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가 가 창조이다.
매거진 <B>는 특정 브랜드를 집중 탐구해서 한 권의 잡지에 꽉 채워서 발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로 출간한 단행본에서는 하나의 직업을 집중 탐구하기로 하고, 그 첫 번째 직업으로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를 선정했다. 과연 매거진 <B> 다운 선택이다. 그리고 부제를 "좋아하는 것에서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으로 뽑았다. 얼마나 적절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인가!
사실 잡지 에디터는 극한 직업이다. 매달 정해진 마감이 있고,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야 하고, 매년 반복되는 기획과 유행이라도 늘 새롭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인터뷰를 해야 하고, 광고주의 심기도 거스르지 말아야 하며, 판매부수의 압박에도 시달린다. 이 책은 직업인으로서 에디터를 바라본다. 동시에 미디어로서 잡지의 미래를 고민한다. 뉴미디어 시대에 종이 잡지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급 정보를 비싼 값으로 전하던 잡지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에디터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다만 가치 있는 것을 전수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종이책은 그 위상을 가질 거예요. 저는 이 점이 흥미롭습니다. 기성세대인 부모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자식에게 어떤 매체를 통해 좋은 사고와 상상력 등을 일깨울 것이냐 라고 하면 아마 전 세계의 모든 부모가 종이책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겁니다. 14-15p
에디터의 경우 에디팅의 대상이 변한다 하더라도 에디팅이라는 행위의 전문성은 계속 남게 되겠죠. 20 p
일본어로 '편집'은 엮어서(編) 한데 모은다(集)라고 씁니다.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사실만 잘 골라내고 그것들을 하나가 되도록 잇는 행위라는 거죠. 99p
전 에디팅이 곧 크리에이티브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보통 창조한다, create라는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로 많이 생각을 하는데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에디팅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 관점에서는 에디터=크리에이터라고 볼 수도 있어요. 27p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바뀌지 않았어요. 새로운 방식과 흐름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하지만 여기에만 몰입하지 않고 진정으로 좋은 이야기와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61-62p
거의 모든 것에 '노'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 것.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일종의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 사람들은 세상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아요. 눈을 뜨고 있지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66-67p
앞으로의 시대에는 기자보다 편집자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고, 더 덧붙이자면 편집자보다 편집자 겸 경영자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90p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의견도 적절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결과 혼자서는 힘든 규모의 결과물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언제나 비판적인 시선으로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을 바라보고 의심해야 합니다. 100p
에디터란 다양한 것을 모으고 또 모아서, 그 안에서 좋은 정보를 골라 정리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직업입니다.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주어진 기획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내고 팀을 만드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0에서 1을 만드는 게 아니라, 1에서 10으로 만드는 것이 에디터죠.... 에디터는 누구보다 많이 웃고, 떠들고, 화내고, 울고, 먹고, 기뻐하고, 상처 받고, 상처를 주는(웃음)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어요. "선과 악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사람은 매력적이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 세상의 수많은 정보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에디터는 매력적이어야만 합니다. 254-255p
에디톨로지의 마지막 장에서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껏 목차, 머리말부터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히 읽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창조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에디톨로지는 칼럼을 모은 글로 각각의 장이 다른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책 어느 곳을 펼쳐서 읽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읽다가 지루해지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도 된다. 잡스 에디터는 6개의 인터뷰와 2개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이 책 또한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충분하다. 각각의 에디터가 겪은 어려움이 다르고, 강조하는 것이 다르다. 어떤 이는 개인의 신념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대중의 취향을 강조한다. 잘 팔리는 잡지와 잘 팔리지 않는 잡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다르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만들 수도 있고, 여럿이서 나눠서 만들 수도 있다. 모든 이야기에 그 나름의 고충과 맛이 담겨있다.
이렇게 파편화된 이야기를 잘 읽어서 엮어내는 것이 편집의 능력이고, 창조로 이어진다. 진정한 창조는 기존의 틀이 아닌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서 플러스알파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母と娘のしんどい関係を見直す本)-엄마와 딸, 거리를 두어야 같이 행복해진다 (0) | 2020.11.05 |
---|---|
아웃라이어(Outliers)-기회가 주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0) | 2020.08.23 |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타인의 해석-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 (0) | 2020.08.04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부자의 사고방식을 배워라! (0) | 2020.08.01 |
축소지향의 일본인-경제 발전기의 일본인론 (0) | 202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