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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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이어령의 한국 문화론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이어령 선생님이 1962년에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을 엮은 책이다. 갓 서른이 된 청년은 한국인의 모습을 때로는 외국에, 때로는 자연과 사물에 빗대어 날카롭지만 연민을 담아 서술했다. 그의 문장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막힘없이 읽힐 정도로 유려하다. ‘풍토’라는 뻔한 제목 대신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낯선 제목으로 충격을 준다.

 

1962년, 그 시절 한국인

이 글이 나온 때는 1962년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겪었고,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으며, 독재자를 쫓아내면서도 한편으론 그를 연민했던 그런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단 한 번도 부강하게 살아본 적이 없으며, 미국의 원조가 없이는 여전히 굶주림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그 시절 한국인은 늘 울었고, 눈치를 봐야 했고, 자연과 주변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했다.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 그렇다. 그들은 분명 여유 있게 차를 비키는 아스팔트 위의 이방인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운전사가 어이없이 웃었던 것처럼 그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꼭 길가에서 놀던 닭이나 오리 떼들이 차가 달려왔을 때 날개를 퍼덕거리며 앞으로 달려가는 그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악운과 가난과 횡포와 그 많은 불의의 재난들이 소리 없이 엄습해 왔을 때에 그들은 언제나 가축과도 같은 몸짓으로 쫓겨가야만 했던 것일까!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우리의 피부 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17p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이 굶주렸기 때문에,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살았기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수동적이며, 잘 울어야 효자 소리를 들었다고 자조한다. 한국인은 ‘도와달라’가 아니라 ‘살려달라’고 말하는데 이는 절망과 무력함에 젖어, 주체성을 상실한 모습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한국인, 특히 서민의 삶은 각박하고, 화초의 이름 따위는 온갖 험한 단어로 만들었으며, 아이들에게는 완구 하나 만들어 줄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마냥 한국인을 구박하진 않는다. 돌담이나 헛기침으로 나타나는 반개방적인 문화, 이는 숭늉과 같이 은근한 맛이 있다. 한복의 선은 날카로운 구석이 없고,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윷놀이처럼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하나의 제대로 된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한국인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우리’로 어우러져 조화롭게 살았음을 이야기한다.

 

1962년의 한국인은 2022년의 한국인과 과연 같은 민족일까 싶을 정도로 낯설다. 2022년의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올림픽도 2번이나 개최했다. 승리와 성취의 경험이 있고, 남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그러니 2022년에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다 보면 저 멀리 외국인을 만난 것 같다. 그러나 그곳에 우리의 부모가 있었다. 눈치 보고 살던, 나를 억누르고 주변과 어우러져야만 살아남았던 그 시절의 한국인이 있었다. 그들이 잘 버텨주었기에 2022년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천 년에 걸쳐 가난하고, 억눌렸던 한국인이 기지개를 펼치게 된 건 채 50년도 되지 않았다. 한국인의 지난 모습을 기억해야 앞으로의 한국인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읽을 글-<축소 지향의 일본인>

축소지향의 일본인-경제 발전기의 일본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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