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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프렌치 디스패치>는 데칼코마니 같은 작품이다. 가상의 공간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앙뉘(Ennui)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림책처럼 그려진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예술과 직업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웨스 앤더슨이 그리는 세계

비현실을 담아내는 화면

감독은 영화가 가진 물리적 특징, 즉 가로로 긴 화면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의도적으로 시네마스코프를 활용해 흑백 영화 시절의 화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정사각형의 브라운관과 세로로 긴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낯선 느낌을 준다. 화면의 시선은 높은 건물(호텔, 신문사, 감옥)을 아래층부터 위층으로 타고 올라간다든지, 길게 이어진 길에서 추격전을 하면서 수직으로 움직인다. 이 때도 축은 정가운데에 고정한 채로 시선만 수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마치 움직이는 하드커버 그림책을 보는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 수직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미니어처와 애니메이션을 적절히 활용하고, 원색보다 파스텔 색감을 쓰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느낌은 강조된다. 따라서 가끔 등장하는 선정적인 장면들마저도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처리된다.

 

액자식 구성

두 작품은 모두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현재의 소녀가 작가의 묘지 앞에서 책을 읽음->1985년에 작가가 그 책을 쓰면서 도입부를 말함->1968년에 작가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노신사의 이야기를 듣게 됨->1932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메인 스토리)로 이어진다.

 

<프렌치 디스패치> 마지막 호의 4개의 섹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잡지의 마지막 호를 열어서 각 섹션을 읽어나가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전작에서는 책 속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수직의 이야기 구성이었다면 후작에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수평적으로 이어진다. 결국 영화의 시작과 끝이 책의 앞뒤 표지처럼 이루어진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기에 영화임에도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웨스 앤더슨이 보는 세상

사랑, 그 찬란함에 대하여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감독은 예술, 소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무슈 구스타브는 천박한 면모를 갖고 있지만 자신이 속한 호텔과 자신의 일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hospitality, 즉 고객에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디테일을 기억하고, 걱정해준다.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이런 인물이 더 많이 등장한다. 교도관 시몬은 화가인 모세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꺼이 뮤즈가 되어준다. 실패를 향해 달려가는 모세를 때론 달래고, 때론 혼내면서 걸작을 이끌어 낸다. 셰프인 네스카피에는 맹독을 먹고 죽어가면서도 소금이 주는 풍미에 감탄한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인 아서 호위츠 주니어는 저널리스트를 격려하고, 그들의 글을 살리려 노력한다.

 

외로움, 인간의 본질

감독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커플은 이루어지지만 짧은 행복 뒤에 한쪽이 어이없이 죽게 된다. 파스텔 빛 가득한 배경에서 행복한 커플을 그리긴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오히려 근본적으로 인간은 혼자이며,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수많은 백인, 금발, 부잣집 사모님들이 외로움을 달래려 무슈 구스타브를 찾았다. 호텔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제로도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을 묵묵히 견뎌내며 호텔을 지켰다.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루신다 크레멘츠는 저널리스트로 인정받고, 글로 먹고 사는 여자로 자부심도 가졌지만 그것이 외로움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슬픈 건 아니다. 원래 그런 게 인간이니까. 네스카피에와 라이트는 타지에 사는 외국인으로서의 외로움에 공감한다. 네스카피에는 요리로, 라이트는 글로 인정받지만 그들의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는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만든다. 눈을 즐겁게 하는 화면이 그림책처럼 이어지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가볍지 않고, 때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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