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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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iga.com

상처: 말하지 못해서

누가 봐도 아름답고 다정한 부부.

어느 날, 아내 오토(音)가 갑자기 쓰러져 죽는다. 아내에게 묻고 싶은 것도,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문과 절망을 떠안게 된 가후쿠 유스케는 더 이상 무대 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

삿포로까지 가는 기차를 타려고 해도 차로 1시간은 가야 하는 곳에서 미사키는 운전을 배웠다. 엄마의 폭력과 사치의 다정함, 무엇이 진짜였을까. 산사태로 모든 것을 잃은 미사키는 무작정 서쪽으로 향했다.

 

소통: 말하지 않아도

가후쿠 유스케에게 공간과 소리는 중요하다. 그의 빨간 사브(SAAB) 자동차는 오토와 함께 한 공간이고, 그곳에서 오토가 녹음해 준 테이프로 연극 대사를 연습한다. 그래서 그 공간에 다른 이를 태우는 것도, 다른 이가 오토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꺼려진다.

 

그가 연출하는 연극에서 배우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관객은 귀로는 낯선 언어를 듣고, 눈으로는 익숙한 언어의 자막을 읽으며, 몸으로는 배우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느낀다. 가후쿠는 대사에 반응하는 연기가 아니라 대사를 넘어 상대방의 존재와 그 모든 것이 포용하는 연출을 한다. 소냐 역할을 맡은 유림이 “말하지 못해도 보고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연극에서 중요한 게 아니냐”라고 묻는 것은 가후쿠의 연출과 나아가 소통의 핵심을 보여준다.

 

유독 자기에겐 닫혀 있던 가후쿠가 미사키를 운전기사로 받아들이고, 미사키에게 오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오토와의 이야기를 해준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가후쿠가 조수석으로 옮기고, 선루프를 열어 나란히 담배연기를 밖으로 내보낼 때 그들은 단순한 대화 이상의 교감을 한다.

 

절망과 수용,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와 <바냐 아저씨>

영화는 사무엘 베게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시작해 안톤 체홉의 연극 <바냐 아저씨>로 마무리 된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목을 매던 인물은 바냐 아저씨가 되어 지치고, 서럽고, 화가 난다고 외친다. 그러자 소냐는 그를 껴안으며 말한다. 살아가자고, 참고 견디며 살아가자고.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도 받아들이자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자고.

 

이제 가후쿠와 미사키는 자신이 껴안은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고, 그 상처를 인정한 채 새로운 날들을 향해 한걸음 내딛게 되었다.

 

사진 출처: 공식 홈페이지(https://dmc.bitters.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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