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728x90
반응형

사진 출처: YES24.com

 

아마존의 시작- The Everything Store

‘아마존(Amazon)’이란 단어를 마주했을 때, 많은 현대인이 남미 대륙에 흐르는 긴 강 아닌 아마존닷컴을 떠올린다. 이 책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지배적인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한국과 중국은 예외이다) 아마존의 시작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성장사를 다룬다.

 

독보적 천재인 제프 베조스는 월스트리트에서 퀀트로 돈을 벌다가 “The Everything Store”를 꿈꾸며 시애틀로 건너와 창업했다. 시작은 온라인 서점이었다. 책은 다품종 소량 제작의 상품이라 오프라인 서점이 모든 재고를 구비하긴 어렵지만 비교적 작고, 가벼우며 제품의 품질은 균일하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에 적합했다. 책의 성공은 마찬가지로 품질이 균일한 DVD, CD 판매로 이어졌다. 이어 유행을 예측하기 어려운(그래서 재고가 엄청나게 발생하는) 장난감, 색과 사이즈, 품질이 너무 다양한(사이트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의류와 신발, 이익률은 높지만 너무 고가라 온라인 구매를 꺼리는 보석까지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항상 최저가로 상품을 판매했고, 물류 혁신으로 배송 적체를 해결했으며, 프라임 서비스를 도입해 무료 배송을 제공하면서도 고정수익을 확보했다. 디지털로 이행하는 흐름을 타고 전자책인 킨들을 보급했고, 서버의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클라우드를 도입했다. 이제는 민간 우주여행까지 제공하려 하며, 나아가 인류를 우주에 정착시키려 한다.

 

베조스가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이 막 상용화 되던 무렵이라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동시에 그 기술 덕분에 기존 오프라인 업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닷컴 버블이 도래하면서 엄청난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수많은 M&A를 시도하고, 실패하면서도 기업의 외형을 확장하고, 시장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마존의 성공은 운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베조스는 시장을 관찰하는 통찰력과 실행력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경쟁사를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고객을 사로잡을 방법을 연구했다. 원클릭 결제를 개발했고, 낮은 가격으로 훌륭한 고객 경험을 제공해야 궁극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플라이 휠’을 고안했다. 위기가 찬스라는 걸 증명하듯이 닷컴 버블이 붕괴됐을 때에도 공격적으로 성장했다. 그리하여 세계 최대의 온라인 소매업체이자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제공업체, 나아가 언론과 우주 산업까지 확장했고, 진정한 The Everything Store가 되었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

베조스는 늘 ‘고객 최우선’을 주장하지만 그가 인본주의 관점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자신이 시장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 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직원과 협력사와 경쟁자를 탄압하고, 말살했다.

 

베조스는 아마존이 소매점의 철칙인 가장 낮은 가격으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낮은 가격과 매력적인 무료 배송, 적극적인 환불, 반품 정책은 고객에게 놀라운 구매 경험을 주었고, 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온라인에서 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까지도 아마존은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마존은 시장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베조스는 차르처럼 군림했다. 아마존 본사의 직원들은 베조스의 공격성과 급한 성격, 폭언에 시달리면서 불확실한 미래와 낮은 급여에 절망했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주는 장기 비전, 미래에 대한 확신과 그 미래가 현실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 때문에 아마존에 남았다. 아마존 물류센터는 엄청난 작업량과 비인간적인 처우로 악명이 높다. 에어컨도 설치하지 않고, 차라리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다가 엠뷸런스를 부른다든지, 화장실 사용시간을 제한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한다. 미 중부를 휩쓴 토네이도로 인해 아마존 물류센터가 붕괴하고, 그 안에서 대량 사상자가 나온 것은 아마존의 이런 정책 때문이다.

직원뿐 아니라 공급자와 협력사인 출판사, 토이저러스 등에게 원하는 가격을 얻어내기 위해 몰아세우고, 협박과 기만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 공급자는 아마존의 시장지배력에 굴복해 결국 낮은 가격에 공급하기에 이른다. 경쟁사에 대해서는 치타가 병든 가젤을 사냥하듯 약한 기업부터 공격해 먹어 치웠다.

 

빛과 그림자

아마존이 직원, 협력사, 경쟁사에게 행한 가혹하고, 무례한 행동은 아마존의 성공에 가려질 때가 많다. 물론 기업에는 적당주의로 일관하거나 현저히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이 무수히 많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도 매일 엄청난 수의 물건이 도난으로 사라지며,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독보적 천재, 효율 신봉자, 숫자로 세상을 보는 사람인 베조스는 이런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원에게 상습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하고, 창업 초기부터 함께 해 온 동료를 가차없이 내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는 직원을 인간이 아닌 기업의 자원으로만 보았고, 사용연한이 지나거나 불량이라고 판단되면 그냥 ‘폐기했다’.

초저가 상품 제공을 위해 협력사를 쥐어짠 것은 그들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 같은 콘텐츠는 저가로 공급한다고 콘텐츠의 질이 높아지거나 기업의 효율성이 좋아지지 않는다. 대형 출판사라면 아마존이 원하는 공급가를 맞추면서도 버틸 수 있지만 중소 출판사는 아마존의 가격 정책 때문에 결국 고사하고 만다. 책과 같은 제품이 높은 이익률을 유지하는 건 성공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며, 소수의 히트작이 수많은 범작을 먹여 살리고, 후에 다시 히트작이 나올 환경을 조성해준다. 아마존의 가격 정책은 결국 출판 생태계를 파괴했다. 아마존 정도의 시장 지배 기업이 압박했기에 출판사들이 아날로그 종이책에서 디지털 전자책으로 이전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모욕을 준 협상과정은 업계에 큰 상처를 주었다.

 

아마존의 생태계에서 사는 건 편하다. 모든 것을 손쉽게 검색하고, 단 한번의 클릭으로 구매해 빠르게 배송된다. 그 시스템을 만든 베조스의 천재성은 놀랍다. 그러나 베조스가 그 생태계 안에 머물러 있는 소비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그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다른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했을지, 그리고 그 결과가 저가의 낮은 퀄리티를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베조스는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에 성공했고, 시장을 정복했다. 이제 그는 언론과 우주까지 점령하려 한다. 그가 쌓아올리는 바벨탑은 과연 우주에 닿을 수 있을까.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