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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넷플릭스, 네이버 영화

형법 제9조(형사미성년자)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소년법 제59조(사형 및 무기형의 완화)
죄를 범할 당시 18세 미만인 소년에 대하여 사형 또는 무기형(無期刑)
으로 처할 경우에는 15년의 유기징역으로 한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소년심판>

“만으로 14살 안되면 사람 죽여도 감옥 안간다던데… 진짜예요? 큭”

 

사람이 죽었다. 피해자는 초등학생. 토막살인과 사체유기라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나이는 만 14세 미만. 현행 대한민국 법에 따르면 형사미성년자는 형사처분을 받지 않으며, 기껏 보호처분으로 소년원에 보내봤자 전과 기록도 남지 않는다.

 

<소년심판>은 촉법소년 제도와 소년법이 가진 빈틈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형사미성년자 제도를 악용해 범인을 바꿔치기하고, 법을 비웃는다. 법원은 미성년자를 갱생, 교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내린다.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할 마지막 수단마저 잃고 절규한다.

 

법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억울한 피해자인가, 아니면 어린 범죄자인가.

소년부 판사 심은석은 법을 비웃는 소년범을 혐오하며, 현행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합당한 처분을 내리고자 한다.

 

법이 너를 지켜준대도 나는 널 용서할 수 없어-<고백>

“마나미는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봄방학을 앞둔 중학교 1학년 교실. 들뜬 아이들은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마시며 장난을 친다.

이어지는 담임 선생님 유코의 고백. 자신의 어린 딸이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했음을, 경찰은 사고라고 했지만 그것은 사고가 아닌 살인이었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범인은 그녀의 학생들 중 2명이며, 만 13세인 그들이 법으로는 처벌되지 않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한다고 말한다. 범인들의 우유에 HIV 바이러스 감염자의 피를 넣었고, 고맙게도 범인들이 그 우유를 다 마셨음을 알린 뒤 그녀는 종례를 마치고 학교를 떠난다.

 

<고백(告白)>은 미나토 카나에의 소설로 2010년에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영상화했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13세의 범죄자에게 복수하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범죄를 선택한 가해자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살의는 있었으나 직접 살인을 하지 않은 범인 A와 살의는 없었지만 살인을 한 B. 같은반 아이들은 A, B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복수와 정의실현의 명분 하에 그들을 이지메한다. 유코 선생님의 고백과 친구들의 이지메, HIV 바이러스에 오염된 우유는 범인 A, B를 흔들고, 그들의 고백은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진다.

 

법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형사미성년자 제도와 소년법은 발달이 미숙한 상태에서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구제하고, 그들을 교화, 갱생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근 청소년의 강력범죄 발생 추세를 보면 이 법과 제도가 오히려 악용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5년간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2017년 6286명에서 2018년 6014명, 2019년 7081명, 2020년 7535명, 2021년 8474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대법원의 ‘촉법소년 범죄접수’ 통계를 보면 지난 4년간 강간(11건→21건), 사기(374건→739건) 같은 강력범죄가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촉법소년 제도를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고, 전과도 남지 않는다’로 이해한 청소년들은 더 쉽게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인 바꿔치기를 시도한다.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하는 것은 그를 교화시켜 범죄 재발을 방지하고, 저지른 죄에 대한 징벌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소년법과 형사미성년자 제도는 교화와 징벌 중에서 교화에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용의자의 신상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다. 심리, 조사 과정에서도 용의자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온화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며, 죄질에 맞는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도 못한다. 

 

반면 피해자는 어떠한가. 가해자가 형사처분을 면제받은 경우 피해자에게 남은 법적 조치는 민사소송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국내법상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피해자의 고통에 비할 수 없이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가해자가 감옥에 간다고 해서, 전과 기록이 남는다고 해서, 막대한 수준의 위자료를 지불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죄를 지은 자가 반드시 처벌받게 된다면 피해자의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다. 그렇게 피해자를 위로하는 것이 교화나 재발 방지만큼 중요한 처벌의 목적인데, 현행 법과 제도는 가해자인 청소년을 보호하느라 피해자의 억울함은 못본 척한다. 범죄자는 전과기록도 없이 당당히 돌아다니는데, 피해자는 상처를 입고 음지로 숨어든다. 이런 역전된 상황이 억울한 이들을 자력구제 상황으로 내몬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응징하기 위해 조폭을 고용하고, <고백>의 유코처럼 살인까지 모의하게 된다. 법이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외면했기에 생긴 역설적인 상황이다.

 

범죄를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워야

법무부가 형사처분이 면제되는 촉법소년(觸法少年)의 연령 기준을 14세에서 12세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령 기준 하향을 반대하는 측은 청소년은 여전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숙한 존재이며, 설사 그들이 제도를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이는 범죄와 처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 어른의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상당수의 청소년 범죄자가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기존 범죄상황에 노출되어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또는 자력구제 방안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본다. 충분히 교화될 수 있는 청소년을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범죄율을 낮추지도 않고, 오히려 어른의 잘못을 청소년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과연 그럴까?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어찌됐든 고의로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불우한 환경에 놓여있는 모든 이가 반드시 범죄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며, 불우한 환경이 범죄의 핑계로 인정된다면 사회가 범죄를 묵인한다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 촉법소년의 연령 기준 변경은 청소년 범죄자의 교화, 갱생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법을 비웃으며,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행태를 줄이기 위함이다.

 

현행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1953년에 정해졌다. 지난 70년 간 대한민국은 신체와 정신의 발육 상태를 고려해 성인이 되는 기준 연령과 선거권을 부과하는 연령을 낮춰왔다. 유독 범죄를 저지르는 뇌만 70년 간 자라지 않았을까? 결혼이나 투표같은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처럼 범죄에 대한 선택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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