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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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듣고, 말하는 세상에 나타난 읽고, 쓰는 사람

프리랜서로서 영화 평론가는 일단 직업으로 성립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제가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한겨레에 칼럼을 동시에 연재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글쟁이로서는 최고의 경지잖아요. 그렇게 벌어도 대학 나와 평범한 중소기업에 취직한 사람보다 적게 벌 거예요. 전 영화평론가이지만 제 수입의 대부분은 글이 아닌 말(방송)에서 비롯됩니다.(중략) 제가 지금 버는 돈의 60%만 글로 벌 수 있다면 저는 방송을 하나도 안 해요. 그런데 글로 버는 돈은 20%도 안 돼요.
-이동진 인터뷰 중(한국일보, 2014.07)

 

나는 인세로 먹고살고 싶었다. 책을 잘 쓰면 책이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문 칼럼이나 시사 프로그램 패널 출연, 외부 강연 같은 가욋일에 한눈팔지 말고, 잘 팔릴 만한 재미있는 신작을 쓰자 마음 먹었다. 2017년 봄이 되자 그 결심이 아래서부터 흔들렸다. 당대 한국 소설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 작가 책 괜찮더라’는 평가를 받아도 판매량은 신통치 않다. 애초에 독서 인구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사는 작가가 돼야 인세로 먹고살만 해진다. 마침 그때 일간지에서 칼럼 연재 제안이 와서 받아들였고, 대학 두 곳에서 강의도 맡았다. 신문 연재를 받아들일 때에는 고료보다 칼럼 필자로서의 인지도를 원했다. 일단 이름을 알려야 했다.
(중략)
다빈치와 모차르트도 밥벌이를 위해 넙죽넙죽 고개를 숙였는데, 내가 뭐라고 화장하고 눈썹 다듬고 사진 찍는 걸 거부하랴.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중에서

 

 

이동진과 장강명.

조선일보 기자 출신 영화 평론가와 동아일보 기자 출신 소설가.

글로 성공했다고 할만한 이들이 글만 갖고는 먹고 살 수 없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영화 평론을, 한국 소설을, 아니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글을 팔기 위해 먼저 말을 팔아 인지도를 쌓기로 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듣고 말하는 세상에 뛰어들었지만 책을 골라 추천하고, 책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논하며, 여전히 읽고 쓰는 삶에 대해 고민한다.

<이동진 독서법>과 <책, 이게 뭐라고>는 이동진 평론가와 장강명 작가가 팟캐스트(“이동진의 빨간 책방”,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며 느끼고, 배우고, 고민한 것들을 담았다.

 

그럼에도 왜 책을 읽어야 해요?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정보와 재미를 다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책을 읽으면 좋은 사람이라도 될 수 있는 걸까?

 

이동진 평론가는 사람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읽고 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채우려 노력하면서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물론 독서가 반드시 인생의 정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오히려 글을 읽어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요즘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적 허영심일 거예요.
-<이동진 독서법> 18p

 

장강명 작가는 좀 더 회의적으로 본다. 히틀러와 마오쩌뚱은 엄청난 다독가였지만 결코 좋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 우리는 사회, 인생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책이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준다.

 

요즘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내가 아닌 남의 이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타인과 세계를 체험하지 않고 이해하는 방법은 언어뿐이고, 그들은 무척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주 긴 언어로 표현해야 하고, 긴 언어를 순서대로 기록하고 재생하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는 책이라고. 다른 사람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다 보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도 있을 테고, 헌데 가끔 그 질문에 "그야 물론 재밌으니까"라거나 "억지로 읽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대답하고픈 충동도 인다.
-<책, 이게 뭐라고> 158p

 

그러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해요?

먼저 이동진 평론가와 장강명 작가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물을 마시는 것이나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당연하고, 필수적인 행위이며, 따라서 그들은 책에 질린 적도 없고, 독서 권태기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해둔다. 그러니 그들은 “책 읽기 싫으면 어떻게 해요?”, “책을 어떻게 읽어야 많이 읽을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한다.

 

그런 그들이 내놓은 비법이라면 아무데서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야 책을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주변 곳곳에 책을 ‘뿌려두어’ 아무때나 쉽게 책을 집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한다.

장강명 작가는 전자책을 적극 추천한다. 휴대성도 좋지만 글자 크기나 줄간격을 조절할 수 있어 가독성이 훨씬 좋아진다고 말한다.

 

더불어 책에 대해 책임감도 죄책감도 갖지 말라고 한다.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재미가 없으면 포기하면 된다. 누구에게나 유익한 책은 없고, 남이 읽어서 재미있었다고 해도 나에게는 재미도, 효용도 없는 책일 수 있다. 더불어 책을 숭배하지 말고, 막 다루라고 한다. 밑줄을 쳐도 되고, 필요하면 찢어서 갖고 다닐 수도 있다. 책은 소중한 굿즈가 아니라 그저 텍스트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다.

 

듣고 말하는 세상이 만든 문맹

사람들이 점점 책에서 멀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 이상은 작년 한해 동안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았다(교과서와 참고서 제외). 한국의 독서인구는 2013년(62.4%) 이후로 계속 감소해 작년에는 45.6%에 그쳤다. 반면 2021년 10-12월 사이에 한국에서 발생한 인터넷 트래픽의 약 27%는 유튜브를 포함한 구글이, 약 7%는 넷플릭스가 발생시켰다. 한국인은 이제 책을 ‘읽기’ 보다는 동영상을 ‘보기’를 원한다. 이런 추세가 계속 되면 글자는 알되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 즉 새로운 유형의 문맹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그들을 단순히 소비자로만 바라볼지, 아니면 그들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생각하지 않는 자는 지배당할 수 밖에 없으며, 생각하는 힘은 글이 주는 여백을 상상으로 채워가면서 키워진다.

 

참고자료
이동진 "나는 유희적인 인간, 영화는 날 흥분시킨다"(한국일보, 2014.07)
구글, 국내 인터넷 트래픽 27% 차지… 올해 넷플릭스법 적용(조선비즈, 2022.02)
독서인구(e-나라지표 지표조회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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