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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길을 잃었다

지구 600km 상공의 기온은 -100도와 125도를 오르내린다.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은 없고, 기압도 없으며, 산소도 없다.
우주공간에서 생명체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2013년 공개된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의 작품으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고, 그 중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지구로부터 372마일(약 600km) 떨어진 우주. 라이언 스톤(Ryan Stone) 박사는 허블 망원경의 통신 패널을 수리하고 있었다. 우주에 처음 온 스톤 박사와 달리 우주왕복선 익스플로러 호의 베테랑 조종사 맷 코왈스키(Matt Kowalski)는 이번이 그의 마지막 비행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러시아가 폭파시킨 인공위성의 잔해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우주쓰레기들은 예상과는 다른 궤도로,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허블 망원경과 우주왕복선이 파괴되고, 동료들이 죽었다. 생존자는 스톤과 코왈스키 뿐. 코왈스키는 스톤이라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끊고 우주 공간으로 사라진다.

 

우주쓰레기가 넘쳐난다

우주쓰레기는 우주에서 지구 궤도를 떠돌고 있지만 이용할 수 없는 상태인 인공적인 물체다. 1957년 10월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이래 인간은 다양한 물체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그 과정에서 고장난 인공위성, 로켓 본체나 로켓에서 분리된 페어링과 부스터, 부서진 우주선의 파편, 우주 비행사가 작업 도중 떨어트린 공구나 부품 등이 우주 쓰레기가 되었다. 우주정거장이나 인공위성처럼 크고, 통제할 수 있는 물체라면 대기권으로 진입시켜 불태우지만 상당수의 우주쓰레기는 너무 작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태라 우주에서 궤도를 따라 계속 떠돌고 있다. 지름 10cm 정도의 파편이라도 초속 7~11km의 빠른 속도로 떠돌기 때문에 위성 하나를 박살낼 정도의 파괴력을 갖기 때문에 우주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197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Donald J. Kessler)는 도발적인 주장을 했다. 지구 궤도에 우주 쓰레기가 증가하면 궤도 상의 다른 인공위성과 충돌해 파괴한다. 그 과정에서 생긴 파편들이 다시 우주쓰레기가 되고, 다른 위성들을 공격하는 연쇄적인 위성 폭발이 일어난다. 그렇게 위성들이 파괴되면 인간은 위성을 활용한 기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문명까지 퇴보할 수 있다. 이를 케슬러 신드롬(Kessler syndrome) 또는 케슬러 효과(Kessler effect)라고 부른다. 당시에는 케슬러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저궤도에 있는 작은 우주쓰레기들은 중력에 이끌려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불타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슬러 신드롬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996년에는 프랑스 인공위성이 우주 쓰레기에 부딪혀 망가졌고,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우주 쓰레기를 피하기 위해 10여 차례 회피기동을 하기도 했다.

 

우주 쓰레기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미 60년 이상 각국에서 쏘아올린 발사체 잔해와 고장난 위성들이 지구 궤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민간 우주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1주일 간격으로 발사체를 쏘자 우주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영화 <그래비티>에서처럼 자국의 사정상 일부러 위성을 파괴하고 그 과정에서 파편이 발생하기도 한다. 2007년 1월, 중국이 자국 위성 펑윈(Fengyun)-1C를 미사일로 요격해 파괴하면서 3000여 개의 우주파편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미 지구 저궤도는 우주쓰레기로 포화상태에 가깝다고 한다.

 

누가 책임져야 할까

영화 <그래비티>에서 러시아가 폭파시킨 인공위성의 잔해 때문에 허블 망원경, 국제 우주정거장 등이 파괴되고, 다수의 우주인이 사망했다. 이런 피해에 대해 누가 책임져야 할까? 또한 스톤 박사는 지구로 귀환하면서 어딘지 모르는 곳에 떨어지게 됐다. 그녀가 추락하면서 누군가에게 재산이나 인명피해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피해는 누가 책임지는 것일까? 스톤 박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구 밖 영역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국제 조약은 1967년에 만들어진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의 탐색과 이용에 있어서의 국가 활동을 규율하는 원칙에 관한 조약’, 일명 ‘우주조약’이다. 미국, 영국, 당시 소련을 중심으로 조약문을 작성했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100여 개국이 조약 당사국이다. 우주조약은 우주 탐사 및 이용이 전세계 모든 국가의 이익을 위해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하며(1조), 오염과 지구 주변의 불리한 변화를 피해야 한다(9조)고 명시하고 있다. 우주인이 조난을 당하거나 다른 당사국의 영역이나 공해상에 비상착륙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모든 가능한 원조를 제공하여야 하며, 우주인을 등록국에 송환해야 한다(5조). 외기권에 물체를 발사한 당사국이 해당 물체가 다른 당사국 및 자연인 또는 법인에게 가한 손해에 대하여 국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7조), 우주 물체에 대한 관할권과 통제권은 발사된 물체의 등록국이 가진다(8조).

 

우주조약을 보완한 여러 조약 중에서 우주물체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한 국제책임에 관한 협약’, 일명 ‘책임조약’은 제3조에서 ‘지구 표면 이외의 영역에서 발사국의 우주 물체 또는 동 우주 물체상의 인체 또는 재산이 타 발사국의 우주 물체에 의하여 손해를 입었을 경우, 후자는 손해가 후자의 과실 또는 후자가 책임져야 할 사람의 과실로 인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인인 스톤 박사는 지구에 비상착륙을 했을 때 그곳이 우주조약의 당사국이라면 필요한 원조를 받을 수 있고, 미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 또한 스톤 박사가 지구로 타고 온 중국 우주선이 발생한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해서는 발사국(아마도 중국)이 국제적인 책임을 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스톤 박사 일행을 공격한 인공위성 파편에 대해서는 발사국인 러시아가 관할권과 통제권을 갖지만, 그 쓰레기로 인해 발생한 물적, 인적 피해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지게 된다.

 

우리는 우주로, 그들은 지구로

누리호의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자력으로 발사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은 인공위성을 만들어도 러시아 같은 다른 나라에 가서 우주선을 빌려 타고 가야 했지만 이제는 각종 우주 조약에서 ‘발사국’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동시에 우주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한국이 우주로 보낸 인공위성 중에서 ‘우리별’ 시리즈와 ‘아리랑1호’가 수명이 다 해 우주 쓰레기가 됐으며, 누리호가 우주로 가면서 분리한 페어링 등도 우주 쓰레기이다. 앞으로 발사체 추가 발사, 달 탐사 등이 예정되어 있기에 한국이 발생시킬 우주 쓰레기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큰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발사체 성공이라는 빛의 뒤에는 우주쓰레기 처리라는 그림자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참고자료
외교부 홈페이지(다자조약)
네이버 지식백과(천문학백과, 한국천문학회)
[네이버 지식백과] 우주쓰레기 - 우주탐사 최대 방해물 (지구과학산책, 김해동)
영화 '그래비티' 상황 예전에도 있었다…전문가들 '케슬러 증후군' 경고(조선일보,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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