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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잿빛 인생-<키즈 리턴>

"마짱 우린 끝나 버린걸까?"
マーちゃん、俺たちもう終わっちゃったのかな?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했어"
馬鹿野郎、まだ始まっちゃいねぇよ

 

마사루와 신지를 태운 자전거는 여전히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마사루는 신지의 등에 힘없이 기댔다. 교실에선 교사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저 바보들 아직도 저러고 있냐?”

 

<키즈 리턴(Kids Return, キッズリタン)>은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감독의 1996년 영화로 49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출품된 작품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험한 세상에 던져지면서 처참하게 깨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마사루는 문제아다. 동급생인 신지를 부하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학교 수업을 방해하거나 길에서 돈을 뜯거나 성인 영화관을 전전하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어느 날, 마사루에게 돈을 뜯겼던 아이가 복수를 하겠다고 권투선수를 데리고 온다. 평범한 양아치에 불과한 마사루는 당연하게도 권투선수에게 실컷 두들겨 맞는다. 충격을 받은 그는 권투를 배우겠다고 신지와 함께 체육관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번 충격을 받는다. 마사루의 그늘에서 항상 바보처럼 서 있던 신지가 권투에 재능을 보인 것이다. 신지와 스파링을 하다가 실컷 얻어 맞은 마사루는 권투를 깨끗하게 포기하고 야쿠자가 된다.

 

푸른 여름-<기쿠지로의 여름>

“우리들도 여기서 헤어져야지? 담에 또 엄마 찾으러 가자. 잘 지내고.”
“아저씨 고마워”
“할머니한테 잘 해드리고”
“아저씨! 아저씨 이름이 뭐야?”
“기쿠지로다! 바보야! 어서 가!”

 

엄마를 찾으러 떠났지만 만나지 못했다. 아마 다음 여름에도 엄마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건 어찌되든 상관없다. 대신에 재밌는 아저씨를 만났으니까. 마사오의 여름방학은 그렇게 끝났다.

 

<기쿠지로의 여름(菊次郞の夏)>은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감독의 1999년 영화로 52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작품이다. 조금 일찍 철이 든 소년과 철이 없는 불량배 아저씨의 로드무비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마사오는 과자를 구워 파는 할머니와 둘이서 도쿄 아사쿠사(浅草)에 산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친구들은 가족들과 여행을 가거나 축구부 합숙훈련을 떠나지만 마사오는 갈 곳이 없다. 쓸쓸하게 집에 돌아온 마사오는 우연히 엄마의 사진을 발견한다.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자신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났다는 엄마. 마사오는 아이치현 도요하시(豊橋)에 산다는 엄마를 찾으러 소중히 모은 용돈을 들고 집을 나서지만… 시작부터 일이 꼬인다. 동네 양아치들에게 용돈을 빼앗길 뻔한 순간, 할머니의 친구인 동네 선술집 아주머니가 마사오를 구해준다. 마사오의 딱한 사연을 들은 그녀는 마사오를 말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린 마사오를 그대로 보낼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백수 건달인 남편에게 돈을 쥐여주며 마사오의 여행에 동행하라고 한다.

 

웃음과 허무의 극단을 그려낸다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영화 <HANA-BI>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동시에 비트 다케시(ビートたけし)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일본의 거물 개그맨.

 

1947년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다케시는 공부를 제법 잘해 메이지 대학 공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에는 흥미가 없었고, 마침 68운동과 전공투에 휘말려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대학 밖의 세상에서 온갖 잡일을 하던 그는 스트립 쇼를 하는 극장에서 막간 공연을 하면서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그저그런 극장의 그저그런 개그맨이었던 그는 만담 콤비를 결성하고, TV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특유의 빠른 말투로 독설을 던지다가 뜬금없이 바보짓을 하는 개그 스타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는 타모리, 아카시야 산마와 함께 일본 예능계의 ‘BIG 3’로 불린다.

 

그는 비상(飛上)과 추락(墜落)을 반복했다.

개그맨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자신의 불륜을 보도한 황색지 ‘프라이데이’를 습격했다. 잡지사를 무단 점거한 후 기물을 파손했고,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소나티네>의 성공으로 영화감독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을 때, 만취한 상태로 오토바이를 몰고 불륜녀의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살아있는 게 기적일 정도의 처참한 상태로 발견됐으며, 그 때 얼굴뼈가 함몰되어 지금도 제대로 된 표정을 짓지 못한다. 그 사고로 그는 몇 달을 병상에 누워서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또다시 일어났다. 부상에서 회복한 후 <키즈리턴>과 <기쿠지로의 여름>을 만들었으며, <HANA-BI>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그의 개그와 영화에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의 반영되어 있다. 충격적이게 웃긴 것과 충격적이게 잔인한 것은 결이 같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인간은 우물쭈물하다가 어이없이 죽는다.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별 거 없다

그의 영화는 세상의 온갖 더러운 민낯을 보여준다. 양아치는 길에서 돈을 뜯고, 야쿠자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인다. 교사는 문제아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형사는 검은 돈을 받는다. 엄마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자식을 버리고,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옷을 벗긴다. 배신은 이어지고, 죽음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키즈리턴>에서 야쿠자가 된 마사루는 철저히 이용만 당하다 결국 불구가 된다. 신지는 재능을 인정받아 권투선수로 성장했지만 선배 선수를 따라다니며 나쁜 것만 배우다 자신의 페이스를 잃는다. 인생의 레이스에서 낙오한 마사루와 신지는 예전처럼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지만 그들에게서 예전 같은 기운과 웃음은 찾아볼 수 없다.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양아치는 마사오의 돈을 노리고, 소아성애자는 마사오의 몸을 노린다. 자신을 위해 돈벌러 갔다던 엄마는 자신을 잊고 다른 가족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히사이시 조의 서정적인 음악과 롱테이크로 찍은 고요한 화면은 이런 더럽고, 험한 현실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죽지 않았다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은 거침없는 폭력성과 깊은 허무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작인 <소나티네>에서는 세상에 염증을 느낀 야쿠자가 주변인을 모두 죽이고도 허무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한다. 그러나 오토바이 교통사고 이후로 삶에 대한 그의 관점이 변했다. 세상은 여전히 더럽고, 인생은 망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죽지 않았다. 살아남았다고 대단한 희망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어버리는 것도 그다지 멋있지 않다.

 

<키즈리턴>에서 신지가 인생이 끝난거냐고 묻자 마사루는 쎈 척을 하며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그들의 인생은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 살아있고, 다시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엄마를 찾으러 가는 길에 마사오는 위험한 일을 겪었고, 결국 엄마도 만나지 못했다. 철없는 아저씨 기쿠지로는 마사오의 용돈으로 경륜장과 술집에 가고, 가진 돈을 탕진해 무전취식을 하거나 노숙을 한다. 그럼에도 마사오는 기쿠지로와 함께 즐거운 여름방학 추억을 만들었다.

 

인생의 70%쯤은 망한 게 아닐까. 기타노 감독은 교통사고를 당해 몇 달간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남은 30%가 대단한 희망은 아닐지라도, 다시 반짝일 수 없을지라도 괜찮지 않을까. 망해버린 70%의 인생을 술 안주 삼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인생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되며 나아간다.

 

참고자료
16년 만에 '기타노 다케시 기획전' 열린다(세계일보, 2016.11)
화난 얼굴로 '불편한 진실' 찌른다, 日서 가장 성공한 '바보' 정체 [도쿄B화](중앙일보,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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