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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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왼쪽부터 네이버 영화, YES24

 

미식(美食)이란 일반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미식가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무엇이 맛있는 음식일까요?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고, 미슐랭 별을 받아야지만 맛있는 음식일까요? 엄마가 만들어 준 따뜻한 집밥, 허름하지만 정성껏 차린 백반도 충분히 최고의 맛이 될 수 있습니다.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혀가 느끼는 감각, 눈이 보는 이미지, 코가 느끼는 냄새에 더해 그 날의 나를 위로해주는 대접,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차림새 등이 전체적인 맛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미식(味食)은 음식을 맛보다로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영화 <아메리칸 셰프(Chef)>는 하루아침에 추락한 유명 셰프가 푸드트럭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이야기입니다. 셰프의 커리어를 망친 건 유명 미식 평론가였습니다. 셰프는 자신의 독창적인 음식을 만들고 싶었지만 레스토랑 사장은 “단골들이 좋아하는 평이한 음식”을 내놓으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미식 평론가라는 사람에게는 평이한 음식이 마음에 들 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셰프의 초창기 음식을 먹어보고 그의 팬이었던 사람입니다. 셰프의 참신한 요리를 기대했던 그는 평이한 요리에 악평을 썼고, 그와 대판 싸운 셰프는 레스토랑에서도 쫓겨나고 SNS에서도 스타(?)가 됩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아메리칸 셰프(Chef)-진짜 셰프는 별점에 무너지지 않는다

 

아메리칸 셰프(Chef)-진짜 셰프는 별점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딴 별 따위 맛있는 음식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납득할만한 “맛”이라는 것이 있을까? 미슐랭 3 스타를 받은 요리는 정말 맛있는 걸까? 맛이란 상당히 주관적이다. 맛은 인간이 속한 지역과 기

moku-culture.tistory.com

 

직장도, 명성도 잃은 셰프는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마이애미에서 푸드트럭을 시작합니다. 자기가 사장이니 원하는 대로 메뉴를 정할 수 있고, 그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재료를 활용해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냅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해진 셰프가 만든 음식은 당연히 맛있습니다. 그를 추락시킨 평론가는 다시 찾아와 이제야 당신이 제 모습을 찾았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미식 평론가라고 모두 악담만 쓰는 건 아닙니다. 일본의 유명 푸드 저널리스트인 히라마츠 요코(平松 洋子)의 글에서는 애정이 느껴집니다. <일본 맛집 산책>이라는 애매한 제목의 책은 원제가 <샌드위치는 긴자에서(サンドウィッチは銀座で)>로, 히라마츠 요코가 문예춘추 직원 Y와 여러 맛집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연재한 글입니다. 한국에는 <샌드위치는 긴자에서>만 발간되었지만 이후 시리즈로 <시타마치에서 스테이크를(ステーキ を下町で)>, <스키야키는 아사쿠사에서(すき焼きを浅草で)>, <유락쿠쵸에서 아지후라이를(あじフライを有楽町で)>, <신오사카에서 니쿠만을(肉まんを新大阪で)>, <칸다에서 가키버터를(かきバターを神田で)>를 펴냈습니다.

 

사진 출처: YES24

 

<샌드위치는 긴자에서>는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지면서 계절에 맞는 음식을 찾아다닙니다. 봄에는 머위순 튀김과 사찰 음식을 먹고, 여름에는 장어(우나기)를 먹습니다. 가을에는 뜨끈한 나베 요리를 먹고, 겨울에는 곰 고기를 먹으러 갑니다. 직원 식당을 돌아다니며 비교하기도 하고,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중국 동북 지방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긴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긴자라는 동네의 특수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심야의 바에서 집어먹는 샌드위치는 왜 그렇게 맛있는 걸까? 카운터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면 갑자기 옆에서 군침을 돌게 하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일 때가 있다. 그러면 더는 참을 수가 없다...<중략>...바텐더인 하세가와 씨는 샌드위치 만들기의 달인이기도 하다. “우선 처음에 빵을 어떻게 굽느냐가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수분이 남아 있지 않도록 바짝 구워야 하죠. 설구워도, 부드러워도 안 됩니다. 끝까지 이상적으로 굽는 방법을 유지합니다. 그다음은 집중력,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도중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반드시 접시 위에 나타납니다.” -본문 중에서

 

접사로 찍은 화려한 사진은 없지만 상상력을 동원해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글 솜씨가 일품입니다. 책 말미에는 작가가 방문한 가게의 정보도 정리해 놓았습니다. 작가는 <혼자서도 잘 먹었습니다>라는 책에서 “혼밥 하기 좋은 식당”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사진 출처: 채널 J 홈페이지

 

혼밥의 대명사라면 역시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 이노가시라 고로입니다. 얽매이는 것이 싫어 결혼도 하지 않고, 매장도 없이 출장만 다니는 남자! 그가 곳곳의 식당에서 궁극의 식사를 합니다. 이노가시라 고로가 찾아가는 식당들은 미슐랭이나 언론에서 극찬하는 식당이 아닙니다. 아무리 맛집이어도 오래 줄을 서야 한다면 돌아서서 나오죠. 동네 흔한 밥집, 멋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음식 하나는 끝내주게 만들어내는 그런 가게들을 찾아냅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고고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활동이라 할 수 있다.-고독한 미식가 오프닝에서

 

여럿이서 음식을 나눠먹으면 즐겁고, 맛있습니다. 하지만 오롯이 나와 음식에만 집중하는 그 순간은 소음과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에게 치유의 시간이 됩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다른 이의 세계를 만나는 시간, 그렇게 인생을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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