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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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ES24

 

코로나 여파로 출판사에 투고하는 원고의 양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기성 작가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미뤄뒀던 원고를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일반인들도 재택근무나 집콕으로 늘어난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굳이 책으로 출판하지 않아도 요즘에는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이 있어서 누구라도 글을 쓰고,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글이나 쓰는 것과 “소설가로 소설을 쓰는 것”은 다릅니다. 소설은 허구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그 허구를 믿고, 매력을 느끼도록 하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소설을 잘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소설을 '잘' 쓰고 싶은 당신에게 선배(?)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잡스 소설가,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쓰고 싶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쓸 수 있도록

 

잡스 소설가,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쓰고 싶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쓸 수 있

소설가: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쓰고 마는 사람 잡스(JOBS)의 4번째 단행본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룬다. 우리는 왜 소설이라는 걸 읽어야 할까? 어떤 사람이 소설가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걸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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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가 만드는 잡스 시리즈는 특정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인터뷰, 에세이를 통해서 해당 직업에 대한 태도와 철학, 생각과 실천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시리즈의 4편인 <잡스 소설가>에서는 국내외 소설가들의 글과 말을 통해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쓰고 마는 사람”이라는 주제를 파고듭니다.

 

우리는 왜 소설을 쓸까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쓴 요나스 요나손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겠죠. 소설가에겐 작품에서나마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힘 말입니다.-요나스 요나손 인터뷰, p.33

 

 

소설가는 이야기를 꼭 전해야 하는 사명감을 지닌 사람이기도 합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특권입니다. 온전히 자기만의 힘으로 그것을 선택하거나 쟁취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이 세상에는 아직 쓰이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고, 쓰여야만 하는, 써야만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분명 존재합니다.-가와카미 미에코 인터뷰, p.298

 

 

요즘은 모든 직업에서 ‘셀프 브랜딩’이 중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외모와 패션이 급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작품이겠죠. 부가적인 것에 이끌려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다른 예비 작가에게 조언한다면 “작품이 깡패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브랜딩, 셀프 PR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고 좋은 작품만 쓰면 된다고요. 한편으로 그것이 작가의 축복 같기도 해요. 어떤 조직에 속해 일하는 사람은 아무리 잘해도, 특히 자신이 팀장이 아니라면 한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작가는 자기가 좋은 작품만 쓰면 얼마든지 (경계를) 넘어갈 수 있어요.- 장강명 인터뷰, p.175

 

 

무엇보다 글을 쓰는 자신이 즐거워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지, 혹은 전혀 불필요한지를 어떻게 판별해나가면 되는가. 이것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자면,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p.106

 

그런 건 예술가가 할 만한 짓이 아니다. 그래서야 공장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요, 분명 예술가가 할 만한 짓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왜 소설가가 예술가가 아니어서는 안 되는가. 대체 누가 언제 그런 것을 정했는가.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소설을 쓰면 됩니다. 우선 ‘딱히 예술가가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소설가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자유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극히 평범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자유인이면 됩니다.-p.150~151

 

 

하루키는 예술이나 평판 같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자유롭게 써 내려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김영하 작가도 마찬가지인데요. ‘보다, 읽다, 말하다’ 시리즈 중에 하나인 <말하다>에서 “소설을 쓰는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선생님이 쓰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쓸 때, 아이들은 전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죠. 그렇다면 결국 금지된 것을 써야 해요.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 ‘소설을 금지해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도 합니다. 소설 쓰는 것이 지겨운 일이 되면 좋은 글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학생들에게 합평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설가가 되려는 예비 작가들의 사정은 다른 모양입니다. 사실 요즘은 누구나 자비로 책을 출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출간하는 것’과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후자는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국내에서는 신춘문예나 출판사의 공모전이 등단의 지름길로 통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들은 빨리, 확실히 등단하기 위해서 공모전 성향을 분석하고, 습작을 반복합니다. 어떤 장르가 선호된다더라부터 시작해 특정 글씨체와 폰트가 좋더라는 소문까지 돌아다니고, 합평을 통해 불안과 좌절을 쌓아갑니다.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에서 문학 공모전을 종적으로 분석하면서 이를 국내 입시 시스템과 횡적으로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공모전과 입시 시스템이 사회를 경직시킨다고 말합니다.

 

당선, 합격, 계급-우리는 왜 입시(入試)에 집착하나?

 

당선, 합격, 계급-우리는 왜 입시(入試)에 집착하나?

문학 공모전을 통해 본 한국의 입시(入試) 시스템 장강명. 연세대 공대 출신으로 삼성과 동아일보를 거쳐 문학상 4관왕을 거머쥔 문단의 스타! 자타공인 문학 공모전의 수혜를 가장 받은 작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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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공채 시스템’이 예전처럼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한다. 몇몇은 이 시스템이 거의 한계에 온 것 아닐까 내심 걱정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선발 시험이 이제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험 자체가 부당한 계급사회를 만드는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번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다시는 지망생들의 세계로 떨어지지 않는 경직성이 근본 원인이다.

 

내부 사다리가 너무나 허약하기 때문에 복권이나 다름없는 공모전이 오히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유능한 인재들이 투고보다는 공모전 도전을 택하면서 업계의 내부 사다리는 더욱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공모전 경쟁률은 점점 더 높아지며, 신인들은 여기서 경력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나는 똑같은 현상이 지금 한국의 취업시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모전’이라는 단어를 ‘공채’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왜 소설을 쓸까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서, 도저히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쓰는 게 아닐까요?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유명 소설가는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부와 명성을 원한다면 소설을 쓰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좋은 작품을 써도 그것이 실시간으로, 계량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소설을 씁니다. 글을 쓰는 자신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런 즐거움을 내려놓은 채 공모전 합격 족보를 뒤지며 습작을 하는 것 본말전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장강명 모두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여러 경험을 했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자연스럽게 써내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오래도록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을 아낀다고 합니다. 이것이 좋은 소설을 쓰는 힌트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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